•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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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다음 날 목적지는 <거제도(巨濟島)>. 광양과 하동을 지나 대나무가 어우러진 섬진강변을 따라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통영을 벗어나니 웅장한 ‘노자산’이었다. 회상컨대 십수 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되뇌었더랬다. 하긴 어디든 그 덩치에 맞춰 산하를 조성하시는 게 창조주의 솜씨요 섭리 아니던가? 잠시 선착장 옆 해안가 몽돌밭을 걷다가 유람선에 오르니 일렁이는 갯물 속에서 해파리들이 출몰했다. 요란한 기계음 사이로 퍼지는 특유의 과장과 입담. 나이든 가이드는 천 년 묵은 해송이 어떻고 견우직녀를 닮은 나무가 어쩌고 신나지만 막상 귀에 들어오는 말은 없었다. 어딜 가나 그놈의 수호신 타령에 사자바위며 미륵바위는 으레 끼어들기 마련이니까. 되레 암벽에 자연스레 나타난 문인석만이 잘 그린 병풍처럼 안구를 파고들었다. 하늘이 십자로 보이는 굴속에 들어가기 전 내자가 탄성을 질렀다. 눈자위가 시린 진초록 바다! 바로 외딴 섬 홍도에서 마주쳤던 그 빛깔이었다. 수심이 40m, 동굴길이가 80m에 이른다는 이바구(얘기의 경상도 사투리)를 끝으로 배는 전속력을 냈다. 그 뱃전을 떠도는 갈매기의 날갯짓이 왠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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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도(外島)해상공원>. 이미 오래 전 박물관으로 허가를 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연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아내. 그도 그럴 것이 이만치 일구느라 치른 고역이 얼마냐는 치하였다. 아담한 하트모양의 꽃밭에 심은 품격 높은 수염송(필자의 명명)이 이채롭다. 푸르고 싱그러운 아열대식물과 풋풋한 각종 수목이 해금강의 절경과 어우러져 언필칭 파라다이스라고 부르기에 하등 모자람이 없다. 두드러진 데는 겨울연가를 촬영한 ‘비너스가든’. 특히 조각상 다윗과 밧세바는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감미롭게 흐르는 고전음악과 어우러져 국내유일의 해상농원의 정취를 한껏 더하고 있었다.

  남국에 조성한 보물섬. 편리한 동선과 발길의 감촉을 십분 고려한 세로(細路)가 백미였다. 다만 십 년 전 걸었던 대나무터널을 파란 하늘빛이 뵈도록 바꾼 건 몹시 안쓰러운 장면. 전망대를 만들기 위해 쌓은 성채처럼 자연을 살리며 떠받쳐 올렸더라면 좋았으련만. 작은 예배당이 보이는 조각공원에는 작은 ‘기념비’가 있었다. 고학으로 잡은 교편을 일찌감치 접고 사업에 뛰어들어 홀로 5만 평을 일궜단다. 자랑스러운 개척자의 성함은 “이창호(1937~2003)”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부인 최호숙이 헌사한 절절한 구절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태초의 계절을 회고하는 몸짓으로 빛나는 광경을 응시하는. 우아한 천국의 계단을 내려와 또다시 ‘선인장동산’을 돌고서 한 모금 약수로 달래는 석별의 정한. 잃어버린 낙원에 파묻혀 한나절을 즐긴 마당에 어찌 아둔한 시심이나마 없을쏘냐. 조촐한 제목은 ‘복락원(復樂園)’.

  외로워 떨지 않으리
  애달피 울지 않으리

  초췌한 실낙원에
  청청한 축복의 손

  학처럼
  에덴을 품은
  아내 닮은 섬이여!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남쪽 끝 외도를 두고 돌아오는 길. 이름이 예쁜 ‘구조라해수욕장’을 껴안은 채 언덕배기에 지은 ‘거제대학’에 들렀다가 굴곡진 해안도로를 따라 장승포의 대우조선소를 엿보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감산지 함양을 지나자니 육십령터널이 퍽이나 길다. 잠시 덕유산휴게소에 들러 한숨을 돌리고는 다섯 시간 남짓을 내달리니 안온한 내 집이다. 소중한 아내와 마주 앉은 식탁. 그윽한 남해산 새우를 풀어 끓인 아욱국에 산호초 웃자라는 청정해역에서 딴 돌미역국물 맛이 입안 그득 감돌 때가 마냥 그립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25호)에서는 '중국 탐방기' 1회 - 중경시의 위용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아울러 6년째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해주고 계신 조하식 선생님께 본보 임직원 모두가 감사드립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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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남도 문예 기행, 거제 의 모습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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