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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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우리 부부는 출입구에 자리한 천주교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치 미리내성지처럼 꾸민 소공원을 거닐었다. 무성한 솔밭에 가려진 바닷가. 눈부신 흰모래만 아닐 뿐 나무랄 데 없는 휴양지였다. 그때 오토바이를 타고 순찰을 도는 남자가 있었다. 곳곳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까닭은 환자의 인권과 섬의 자원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평화로이 노니는 아기사슴을 잡아가고 자생 난을 분별없이 채취해 간 뒤로부터. 초등학교였던 건물을 끼고 노인정을 지나는 동안 의문이 불쑥 들었다. 집집마다 세워놓은 차량은 다 뭐고 따로따로 떨어진 민가는 왜일까? 알아보니 병원직원들의 거주구역이었다.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아랫동네로 내려가니 우체국이 있고 둥근 갯벌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채 바지런히 조개류를 캐는 아낙들. 아마도 더불어 사는 직원들의 권속인 듯싶었다.
 
  일련의 건물들이 늘어선 풍경. 제법 큰 병원이었다. 각종 설치물로 가득한 운동장도 보였다. 퍽 어수선한 건 방금 큰 행사를 치른 뒤여서였다. 그리고 역사를 정리한 전시관. 안내를 맡은 권사는 공들여 흑백사진을 가리켰다. 원한 맺힌 과거지사. 아내가 정성이 담긴 후원금을 건네니 감동했다. 그 옆에 <중앙공원>이 있었다. 강권하기를 꼭 몇 억짜리 나무를 구경하고 가라더니 과연 반송(盤松)의 품새가 뛰어났다. 가지런한 솔잎도 그렇거니와 여러 갈래로 뻗어 오른 솔가지들이 천하일품. 일본산 실편백의 모습 또한 진귀했다. 위는 버섯 모양새로 가다듬고 줄기를 갈래지어 멋들어지게 가꿔냈다. 뜻 깊은 ‘구라탑(救癩塔)’ 옆에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원생에게 살해당한 일본인 원장의 사연을 을씨년스레 적어 놨다. 그는 태평양전쟁 때 이들의 분신과도 같은 청동상마저 물자로 징발했단다. ‘자애의원’이란 말처럼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더라면 심판을 면할 수도 있었으련만. 그런 만행은 다신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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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를 보니 어느새 뉘엿뉘엿 지는 해. 하오 6시면 배가 끊긴다는 걸 염두에 둘 시각이었다. 그래서 돌아나가는 차를 붙잡으려했으나 대놓고 싫은 눈치들. 하릴없이 잰걸음을 서둘 수밖에. 꽤나 멀었다. 길목에 우중충한 신사와 원불교당이 떡 버텼기에. 둘 다 한통속. 이토록 조상신을 뫼시고 우상단지에게 절들을 해대니 갈수록 영은 피폐해지고 살림살이는 곤궁하다. 소록도 방문 두어 시간. 빠져나오니 아내의 얼굴에 피로감이 비쳤다. 농담 삼아 당신 앞으로 예까지 갔다 왔다는 자랑께나 늘어놓을 거랬더니 퉁명스레 대꾸했다. 얼마나 힘든데 그런 흰소릴 하냐며. 어쨌거나 한동안 궁금증으로 남았던 바가 얼마큼은 채워진 참. 아기사슴을 닮은 섬을 돌아본 감회를 심혈을 녹인 연시조로 대신하련다.
 
  손가락이 뭉개져 숨죽이던 문둥이
  얼라 간 빼먹었다 괴소문에 시달려
  남녘 끝 언덕에 올라 보리피리 불더니
  솔숲 사이 바람결에 졸고 있는 사슴더러
  의원이 어드메냐 한사코 캐물은즉
  끝없는 왜인들 만행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병든 아내 들쳐 업고 줄행랑을 치다가
  갈기갈기 찢어발긴 호적등본 날리며
  애끓는 휘파람 깨물고 새가슴을 후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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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형의 섬을 가슴에 묻고 향한 곳은 순천. ‘고흥유자공원’을 지나 벌교를 거쳤다. 수소문 끝에 들어간 모텔은 고맙게도 웬만한 호텔보다 나았다. 갓 꾸민 신혼집처럼 환상적인 꾸밈새. 최신형 벽걸이 TV와 컴퓨터, 깔끔한 원형침대, 푹신한 소파에 탁자, 편리한 비데며 샤워시설 등이 죄다 자동화시스템일뿐더러 냉온수기는 물론 음료수 3개에 커피와 녹차까지 두루 갖춰놓았다. 덕분에 쌓인 이메일을 소화했고 며칠 만에 나의 홈페이지를 열어볼 수 있었다. 두고두고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 다음호(324호)에서는 '남도 문예 기행' 4회 - 거제 <외도>의 모습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아울러 6년째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해주고 계신 조하식 선생님께 본보 임직원 모두가 감사드립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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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남도 문예 기행,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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