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황수근 학예연구사(평택문화원)
 
평택이야기.JPG
 
 
시인은 자신의 시집이 발간되면 교우가 있는 시인들에게 보낸다. 그러면 시집을 받은 이는 시집 안에서 가장 맘에 드는 시를 손으로 옮겨 써서 답장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대체 될 때도 있다고는 하지만 손 편지나 손 글씨를 잘 쓰지 않는 요즘에 이는 참 아름다운 풍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이에 손 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는 이미 추억이 되었지만, 간찰이라고 불린 편지는 우리 선인들은 일상생활의 하나였다. 이황과 기대승이 7년간의 간찰을 통해 벌인 사단칠정논쟁처럼 정치와 철학을 논하는 것부터 득남이라든지 안부를 묻는 등의 개인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었다.
 
 평택문화원에서는 심순택의 간찰 3점을 보관하고 있다. 1875년 정월 20일 보낸 수신자 미상의 안부 편지, 충청감사로 재직 중일 때 무주 유배중인 이 참판에게 보낸 안부 편지, 겸곡에 사는 분께 보낸 감사 편지이다.
 
 이 중 충청감사로 재직 중일 때 무주 유배중인 이 참판에게 보낸 안부 편지는 유배 간 이 참판을 위로하는 내용이며, 물목은 소주 10선, 포 2첩, 민어 두 마리, 조기 3속, 젓갈 다섯 되이다. 그리고 피봉의 뒷면에는 뒷면은 관인을 중앙에 찍었다. 조선시대 유배 중인 죄인에게 평소 교유가 있었던 인물들의 각종 물품의 증여를 포함한 편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심순택 간찰은 의미가 있다.
 
 심순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84년 우의정, 그 후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그는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사대당 내각의 영의정이 되어 청 ·일의 강대국 사이에 끼인 조선의 정치적 고비를 여러 번 겪었다. 진위면 봉남리에서 말년을 보냈고 현재 그의 묘와 신도비가 남아 있으며, 그의 부인인 구씨부인은 봉남리에 구씨학원을 세워 지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였던 사람이다.
 
 이 간찰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심순택의 한 부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인물됨이나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는 심순택의 또 다른 한 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 황수근 학예연구사는 수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전)한국문화재단 연구보조원, (전)평택교육지원청 우리고장 평택시 교재 감수위원을 지냈으며, 지난 2011년부터 평택문화원 평택향토사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현재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 민간기록조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평택시사> 집필에 참여한 황 연구사는 앞으로 본보에 30회에 걸쳐 '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를 시민, 독자여러분에게 알기 쉽게 연재할 예정입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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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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