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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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마르(Colmar)>로 이동하는 길. 신기하게도 달리다가 둥그런 지평선을 보았다. 보트산맥을 끼고 발달한 목재산업뿐만 아니라 화이트와인을 생산하고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땅. 사용하는 언어는 프랑스 동부지역의 불어에 독일어 사투리가 혼합된 양상이란다. 신성로마제국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곳. 특히 성당의 종탑이 청탑(靑塔)이어서 널리 알려졌다는데 ‘프랑스의 베니스’라는 명성에 걸맞은 풍경이었다. 어부들이 대대로 살았다는 하천은 운하로 쓰던 물길. 얼핏 보면 하수종말처리장을 연상케 하지만 산책하기에 편리하도록 꾸몄다. 흐르는 물가에 잔가지를 늘어뜨린 능수버들이 일품. 한 가지 상식은 있단다. 냇물이 흐리면 녹아있는 양분도 많아 농사에는 최적이라는 말. 그야말로 팁이었다. 그때 도심을 관통하는 미니기차가 보였다. 프랑스의 끝자락이어선지 모양새가 아기자기하다. 알자스지방은 유난히 가톨릭색채가 강한 곳. 거듭난 개신교는 꼬리를 감추고 이슬람의 거센 회리바람이 불어 닥쳐 뭇 영혼을 좀먹고 있다. 그런데 파리에서 보았던 자유의 여인상이 여기도 있단다. 수풀과 초지의 어울림. 산꼭대기에 고성을 짓고 둔덕에는 포도밭을 일궜다. 산기슭에 둥지를 튼 마을. 한쪽에다 십자가를 세우고 못 박힌 사람의 형상을 매달아놓았다. 짐작컨대 죽은 자를 위한 위령비. 하지만 영혼 구원은 그리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살아생전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행일치를 이루면 누구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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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룩셈부르크 국경까지는 한 시간 거리. 수종의 변화가 확연했다. 홀쭉한 침엽수림이 속속 등장하더니 자작나무들이 민낯을 내밀었다. 기가 막힌 땔나무거리. 그러나 장작의 화력을 운운하기 전 반드시 알아둘 게 있다. 대기오염을 부르는 요소 중 하나는 벽난로에서 뿜어대는 일산화탄소이기 때문이다. 아담한 크기의 휴게소. 기본 시설은 갖췄으되 우리네처럼 다양하지는 않았다. 눈동자를 꽉 메운 건 싱싱한 크리스마스트리. 그림엽서에서나 보던 풍치를 어찌나 빼닮았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이윽고 <룩셈부르크 대공국(Grand Duchy of Luxembourg)>. 프랑스보다 한결 세련미가 넘쳤다. 맨 먼저 눈에 띈 건 미끈한 가드레일. 매끄러운 노면에 차선 또한 선명했다. 1867년 5월 10일 독립한 이래 대한민국의 1/4가량의 면적(남북으로 82km, 동서로 56km)에서 50만여 명이 1인당 10만 불의 부요(富饒)를 맘껏 구가하는 나라. 입헌군주제에 양원제를 채택하고 국가원수는 대공(大公)이, 정부수반은 총리가 맡는 정치체제다. 참고적으로 대공이란 작은 공국(公國)의 군주를 일컫는다. 온대성기후에 공식 언어 없이 프랑스어, 독일어, 자국어를 두루 통용하는데 수도와 나라 이름이 일치하는 점도 특이사항. 동네마다 성당이며 교회가 있는 풍경 또한 프랑스와는 다른 점이다. 종교분포는 로마가톨릭 87%에 개신교 13%가 섞여 살고, 나라꽃이 장미여서 그런지 가가호호 빨간 색들로 장식했다. 1인당 소득은 무려 10만 달러를 상회하는데 이웃나라의 견제를 피하려고 수치를 일부러 줄여서 발표한다니 샘난다고 할지 얄밉다고 할지 헷갈린다.
 
  수도 룩셈부르크를 밟은 시각은 어둑발이 내릴 즈음. 아쉽게도 눈앞의 풍경화는 선명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쳐 간간이 빗발까지 들치는 대지. 어렴풋이 보이는 <아돌프 다리(Adolf Bridge)>는 뉴브릿지의 전형이라는데 어둠을 헤치고 가까이 다가가기엔 때가 늦었다. 흐릿하나마 먼발치에서 보니 한눈에 난공불락의 형세. 전쟁기념탑을 등지고 깊숙한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품이 의연했다. 하지만 깎아지른 절벽을 조준해 셔터를 눌러댄들 물체를 알아보기 어려우니 어쩌랴. 신구 시가지를 잇는 가교라는데 공법이 보통 탁월하지 않고는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힘겨울 성싶었다. 벼랑 아래 가녀린 오솔길과 여러 시설들을 보고도 접근할 수 없는 게 못내 안타까웠다. 가이드에게 항의성 질문을 던지니 일정상 겨울에는 어쩔 수 없다는 해명. 하릴없이 주어진 시간 동안 옛 시가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부드러운 보도블록에 화려한 상가들. 청정한 기운이 양말까지 전해오는 가운데 내 눈길을 끈 건 지문을 새긴 보도였다. 뛰어난 역발상이 가상했다. 1913년 예수회에서 조성한 <헌법광장>. 바로크, 로코코, 고딕양식 등을 가미한 곳에 승리의 여신이라는 나이키를 두었다. 이채로운 건 살아있는 나무를 빙 두른 벤치. 도시 환경을 꾸미는 책임자가 이런 걸 벤치마킹하면 창조경제의 해답이 나올 듯도 하건만 대체 뭘 하는 걸까? 고무적인 건 이토록 작은 나라에서 한국전쟁에 1개 소대를 파병했다는 사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 마당에 추념탑을 세운 거였다. 국방도 탄탄해서 곳곳에 지하요새를 갖추고 한꺼번에 35,000명씩을 대피시킬 수 있다니 대단하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9호)에는 서유럽 기행 여섯 번째 이야기, '수수한 벨기에 민낯'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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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기행 - 정교한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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