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 문화재명: 농성 (農城)
- 시대: 미상
-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74호
- 지정일자: 1981년 7월 16일
- 소재지: 팽성읍 안정리 산41-5
- 소유자: 평택시
- 관리자: 평택시
- 규모: 둘레 305m, 면적 14,900㎡

■ 고려시대 해안방어와 관련해 축조된 방형 토성

 농성은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위치하고 있는 토축의 평지성이다. 평지에 해당되는 해발 24m의 낮은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그 외곽을 감싸는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고려시대 해안방어와 관련해 축조된 방형 토성이다.

 평택시에서 45번 국도를 따라 팽성방면으로 진행하면 읍소재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동창리 원정리 방면으로 약 1.5km 북서진하면 도로의 동쪽으로 평야지대가 펼쳐지며 중앙에 소나무 숲으로 조성된 작은 구릉이 있다. 이 구릉지에 농성이 위치하고 있다. 농성은 안성천과 아산만이 합쳐지는 지역에 형성된 비옥한 평야지대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농성주위에는 북쪽의 해발 20~30m의 낮은 구릉과 안성천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농성을 쌓은 이유는 삼국시대에 도적 때문에 쌓았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신라말기 중국에서 건너온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급이 축조하여 생활 근거지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농성을 목적과 기능에 따라 분류하면 읍성(邑城)에 해당된다. 읍성이란 지방의 관청과 민가를 둘러서 쌓은 성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지방도시에 평산성 형태의 읍성과 함께 평지에 방형 토성이 축조되었다. 주변의 고려시대 읍성으로는 평택 비파산성은 용성현성(龍城縣城)으로, 덕목리성은 고려시대 광덕현성(廣德縣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중 평택 비파산성은 평산성이며, 덕목리성은 네모꼴의 두성이 동서쪽으로 배치되어 있는 평지 방형 토성이다.

 농성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흙으로 내외면을 쌓아 토루(土壘:흙으로 쌓은 작은 성)를 축조하였다. 평면형태는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방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동벽 93m, 서벽 85m, 남벽 56m, 북벽 71m로 전체둘레는 305m이다. 외성벽의 높이는 동벽과 북벽이 8~10m정도로 높은 편이고, 서벽과 남벽은 6~8m로 다소 낮은 편이다. 내성벽의 높이는 3~4m내외이다. 성내의 북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그 앞으로는 넓은 평탄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문지(門址)는 동벽과 서벽의 중간부에서 확인되는데, 규모는 너비 2~10m내외이며 높이는 4~5m이다. 현재에도 동문지와 서문지를 통해 쉽게 성내로 진입할 수 있다.

 유물은 통일신라~고려시대로 편년되는 기와편과 토기편이 성내부에 산포되어 있다. 농성은 근래까지도 미처 문화재로서 가치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1980년 7월 인근 군부대에서 그 곳에 장교 및 하사관 주택을 건축하고자 임야훼손허가 처리과정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문화공보부에 의뢰 조사한 결과, 현재 남아있는 토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여 문화재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판정을 받고 1981년 7월 16일자로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자료제공: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정리 김선우 기자 ptlnews@hanmail.net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4348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평택의 문화재] 농성(農城)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