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 문화재명: 평택농악 (平澤農樂)
- 시대: 삼국시대
- 지정번호: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 지정일자: 1985년 12월 1일
- 소재지: 팽성읍 팽성2길 18-5 (팽성읍 평궁리 242-1)

■ 농악,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열어 한국 농악에 대해 심사한 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무형유산위원회는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간위원회(한국 포함 24개국)는 농악이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다수의 행사장에서 공연됨으로써 공연자와 참가자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이번 등재는 농악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시성을 높이고 국내외 다양한 공동체들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 김장 등에 이어 17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갖게 됐다.

 농악은 풍물·두레·풍장·굿이라고도 한다. 김매기·논매기·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각종 명절이나 동제(洞祭)·걸립굿·두레굿과 같은 의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악은 크게 웃다리농악(서울, 인천, 경기, 충청지역), 전라좌도농악, 전라우도농악, 영남농악 등으로 나누어진다. 각 지역에는 그 농악의 대표성을 인정받은 단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평택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였고, 이는 평택농악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평택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는 일찍부터 사당패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 말기에는 그들의 농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그래서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인 동시에 걸립패농악(승려들이 꽹과리치면서 염불하고 공양하는 일)의 성격을 갖는다. 전문 연희패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해오던 평택농악은 인근의 안성·화성 등지와 함께 농악의 중심역할을 해오던 중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명실공이 웃다리가락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 평택농악,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평택농악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58년 이승만 대통령 생일축하 전국 농악경연대회가 있을 때 웃다리지역 명인들을 불러 모아 참가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단체는 대회가 끝난 후 곧 해산되었고 1980년 제21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때 당시의 평택군의 요청을 받아 천안, 안성, 서울, 공주지역의 명인들과 평궁리 두레농악 패를 주축으로 “평택농악”을 만들어 참가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대회에서 평택농악은 공연수준이 프로급이라 하여 특별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최은창은 상쇠로 기능보유자가 되었고, 이돌천(1919~1994)이 상법고로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2002년 상쇠 최은창이 사망한 후 1990년 기능 보유자 후보로 지정되었던 김용래(1939~)가 법고로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농악에 사용되는 악기로는 꽹과리, 징, 북, 버꾸, 호적, 나팔이 있다. 편성은 영기수(令旗手), 농기수(農旗手), 나팔수, 호적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1, 징수 2, 설장구, 부장구, 상장구, 북, 상버꾸, 부버꾸, 종버꾸, 꼬리버꾸, 상무동, 종무동, 삼무동, 칠무동, 중애(사미), 양반으로 되어있다. 농악수들은 옛날 군졸들이 입었던 의상을 입고 그 위에 색띠를 걸쳐 매며 머리에는 벙거지나 고깔을 쓴다. 악기에 있어서 징과 북이 타지역에 비하여 적으며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다.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며 노래굿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또한 길군악칠채는 경기농악에만 보이는 장단으로 평택농악의 길군악칠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웃다리가락은 가락의 종류가 많지 않은 반면 변주가 다양하다. 또한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으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독특한 가락으로는 칠채와 쩍쩍이 등이 있다.

 판 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를 보여주기 위하여 벌이는 풍물놀이다. 판 굿은 보통 30여명 정도로 이뤄지는데 농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호적수가 따르며 그 뒤로 쇠, 징, 장고, 북, 법고, 무동 등이 이어진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공연성이 뛰어난 남사당패 예인들의 전문적인 연희를 받아들여 복합적으로 구성한 수준 높은 농악이며, 무동놀이(어른의 목말을 타고 아이가 춤추는 놀이)가 특히 발달하였다.

자료제공: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정리 김선우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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