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미처 예상치 못한 바였다. 공항 가는 버스에 자리가 동나는 바람에 기사와 실랑이를 벌일 줄은. 고맙게도 아내는 오산에서 앉아갈 수 있었다. 재충전하는 방학이면 몇 차례씩 오가는 길이거늘 입석은 처음이었다. 뿐더러 공항청사의 4층에 올라 정자에서 쉬어본 적도 처음이다. 느긋이 만경정에 걸터앉아 싸온 간식을 들며 밑을 내려다보니 다들 바빴다. 뜻하지 않은 소득도 있었으니 친절한 창구 아가씨 덕분에 마일리지 적립을 비행기 표를 통해 확인한 터, 우습게도 만 십 년 만이었다. 이따금씩 만나는 공연은 기분 좋은 이벤트. 이른바 ‘문화와 하늘을 잇다’라는 프로그램으로 국악과 양악을 섞어 선봬는 연주였다. 베푸는 혜택은 검색대를 통과한 뒤까지 이어졌다. 꽤나 감미로웠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실내악의 선율이 쇼핑을 즐기는 이들과 게이트를 찾는 발걸음을 꽉 붙잡아맬 만치. 문제는 영종도를 뒤덮은 희뿌연 물안개. 다행히 비행기는 한 시간가량을 연발하는 데 그쳤다. 곧바로 아시아나에서 제공한 기내식은 저염식. 출출한 김에 생선요리에 감자를 곁들여 허기를 메웠다. 그런데 왠지 팔목이 허전했다. 곧바로 두 시간 늦은 시차를 맞추려다보니 시계가 없었다. 미팅 시각이 하오인지라 한껏 여유를 부렸는데도 막상 필수품을 빠뜨리다니……. 아무튼 이번 여행은 이래저래 색다른 체험의 연속이었다.

 대지를 뜨자마자 제주를 품에 안은 동체. 곧이어 대만의 하늘 아래 점점이 박힌 가로등을 굽어보며 가오슝의 저녁놀을 감상하노라니 어느새 남중국해였다. 자정 가까운 시각에 안착한 탄손누트 국제공항. 총 3,777km의 거리를 평균시속 10,000km의 속도로 약 5시간에 걸쳐 숨 가쁘게 날아온 참이다. 호치민(Ho Chi Minh)의 옛 이름은 사이공[西貢]. 명실 공히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최대 도시다. 통일 수도는 비록 1,738km 떨어진 하노이로 이전했으되 여전히 상업과 경제 중심지로 각광받는 곳. 최근 10년간 거주인구가 부쩍 불어나 현재는 1,200만을 헤아린단다. 가이드는 한국교민의 숫자가 어느새 10만을 넘어 일찌감치 한국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렸다고 진단했다. 우리 부부가 머문 호텔은 Golden Crown Hotel. 그러나 허름한 방구석에는 창문조차 없었고 아내는 비밀번호를 까먹어 가방마저 쉬이 열리지 않는데다가 덜컥 형광등까지 나가는 사단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우리 둘은 순식간에 일어난 삼중고에 적잖이 당황했다. 출발하기 전 치른 여행사와의 일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아뿔싸, 이렇듯 치졸한 보복을 하다니! 그러나 나는 맘먹고 기도하며 예상 가능한 비밀번호를 차례로 조합하니 가방은 이내 열렸고 전깃불은 고대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 내려가니 종업원이 선뜻 메뉴판을 건네며 아침식사를 주문하라는 게 아닌가? 십상팔구 추가요금을 받자는 수작이라고 의심할 만한 형국. 그러나 이 또한 소통의 부재로 인해 빚어진 오해였다. 헝클어진 실타래가 술술 풀린 뒤 돌아보매 조용한 숙소에서 나름 쾌적하게 보낸 이틀 밤이었다.

 끝없는 오토바이 행렬. 가이드의 설명인즉슨 상하를 기준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나라(면적은 남한의 약 3.3배, 해안선의 길이가 3,444km에 달함)에서 평생 볼 오토바이를 단 사흘간 앞당겨 보리라는 전언이었다. 18세 이상이 몰고 다니는 오토바이 숫자가 전국에 무려 3,900만여 대. 9,300만에 이르는 전체 인구 중 대충 2.4명당 1대 꼴이다. 오토바이 주차료도 있어 하루에 5,000동(한화 250원 정도)이란다. 화폐단위는 동으로 50만 동이 우리 돈 25,000원가량이니 대략 1/20의 가치를 지닌 셈이다. 이렇듯 만만찮은 숫자를 셈하며 사노라면 덩달아 이들의 암산 실력도 늘 듯한데, 아무튼 1인당 1,500불 정도의 국민소득을 감안한다 해도 매우 싼 요금이다. 주류인 비엣 족과 53개 소수민족이 58성 5직할시에 어우러져 사는 베트남. 그들 사이에 이른바 몽골반점이 나타나는 점도 무척 신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의 화산 이 씨(花山 李氏) 가문이 이네들의 시조라는 것. 이를테면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피조물의 역사를 눈앞에서 목도하는 중이다. 차창밖에 비친 도심 풍경. 물가에 늘어선 판잣집을 보니 언뜻 마닐라 공항에서 만났던 양철지붕이 떠올랐다. 겉모습은 허름하기 짝이 없으나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니 그런대로 풍경이 나오는 광경. 보기와는 달리 예전에는 대형 군함이 드나들 만큼 수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단다. 노면은 울퉁불퉁하다 못해 중형버스의 차체가 수시로 기우뚱거릴 지경. 조잡한 거리 모습이야 그렇다 쳐도 왜 시골마저 이렇다 할 경치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내심 궁금증이 일었다. 난개발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의 전철을 밟아나가는 것 같아 짐짓 되짚어보는 말이다. 중앙정부가 힘을 행사하던 시절 초가지붕을 대치할 만한 풍치를 가꾸었더라면 아마 우리는 지금 예기치 않은 관광 특수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9232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베트남 기행(호치민의 첫인상 - 1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