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1521년 포르투갈 마젤란에 의해 세부 섬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19세기 말까지 에스파냐의 식민지로 전락한 곳. 이네들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가톨릭교회 국가로 만드는 가운데 종교권력이 식민지세력과 결탁하는 바람에 뒤늦게 19세기 말에야 독립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단다. 결국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서반아(西班牙)가 파리강화조약에 따라 필리핀의 지배권을 미국에 양도함(2,000만 달러)으로써 1935년 필리핀 연방이 조직되었으나 정작 일본군의 점령을 벗어난 때는 1943년이었다. 이어 3년 뒤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했고 공화제를 채택하여 아시아권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보이지만 마르코스의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경제 동력이 떨어져 갈수록 빈부격차만 벌어지고 말았다. 가령 바닷가를 장식한 요트만 해도 한 달 관리비가 120~150만 원선. 이에 비해 굶주리는 백성들은 여기저기 구걸을 일삼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줄잡아 1,000만 명 이상이 운집한 마닐라는 후진사회의 전형. 들여다보면 교통경찰이 공공연히 뇌물을 챙기고 공무원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아직도 돈이면 모든 게 통한단다. 그러니 희망을 망실한 거대도시에서는 잔인한 폭력과 무자비한 살인이 횡행하고 난무할 밖에.

  사회제도나 의식수준을 봐도 스페인이나 미국의 통치를 거친 흔적이란 희미하다. 스페인을 닮은 정교한 인프라는 고사하고 미국처럼 합리적 시스템과도 거리가 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국을 가리켜 아직 미국의 속국이라고 단언한다. 아울러 말레이시아와 스페인과는 피가 섞였으되 미국과는 혼혈이 아니라고 인식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비교적 짧은 미국의 식민통치기간(1898~1942)도 그렇거니와 워낙 동떨어진 국력의 크기가 이들을 그리 몰아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막상 자기들을 사지로 내몬 마젤란을 영웅으로 추앙한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 단 하나 남성보다 여성이 우월하다는 사고만은 확고하다. 즉 여아선호사상이 팽배해 거꾸로 여존남비사상까지는 이해하겠으나 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작태는 솔직히 경악스럽다. 심지어는 정부 국장급 부인이 공공연히 술집에 나간다고 떠벌일 정도라니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어쨌거나 배타성에 관한 한 한국인을 따를 자는 없다. 부도덕한 처신으로 코피아노를 양산하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나서야 마땅하다.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그들이 자랑하는 <리잘공원>에 들렀다. 필리핀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설을 들으니 호세 리잘(JOSE RIZAL)은 열사(烈士)였다. 가이드가 제시한 의사(義士)와 열사의 기준은 무장과 비무장의 여부. 목적한 바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차이로 알고 있던 필자와는 편차가 있었다. 1896년 총살당한 처소를 기념해 마닐라 중심지에 추모의 장을 마련했단다. 그가 산화 전 남긴 시, “나의 마지막 고별(MI ULTIMO ADIOS)”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한 기념탑을 무장한 헌병이 불철주야 지키고 섰다. 한쪽에는 필리핀의 각 섬들을 본뜬 미니어처가 있고, 중국과 일본식으로 꾸민 정원의 연못 속에 잉어를 풀어놓았다. 아쉽게도 이걸로 오늘 일정은 끝. 일행이 달랑 우리 부부뿐이어서 따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곤란하단다. 대뜸 남는 시간에 호텔 주위를 산책해도 되느냐고 물으니 자신을 절대 표적으로 노출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아시다시피 필리핀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총기 소지를 묵인하는 나라. 게다가 한국인은 현금이 많다고 알려져 극히 위험하단다. 아울러 부탁하기를 교민과 관광객을 귀신 같이 알아보니 각별히 유의하란다. 탈취한 여권은 100만원을 호가하는데 혹여 미국비자라도 붙어있으면 값이 천정부지로 뛴단다. 의아한 건 이들에게는 이른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다는 사실. 따라서 비자는커녕 여권발급조차 어려워 남의 여권을 탈취하는 데 혈안이 들려있단다. 

  새벽같이 서두른 탓에 심신이 꽤나 노곤하다. 잠시 방에 누워 쉬다가 조심스레 호텔 주변을 거닐었다. 한 나라 수도라고 보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가지를 두고 가이드와 저녁을 먹은 데는 ‘신한마당’이라는 한식집. 인사성이 밝은 현지 여성들을 뽑아 유니폼을 입힌 품이 단정한 만큼 음식 또한 맛깔스러웠다. 주 메뉴는 오징어와 돼지고기볶음. 무엇보다 된장찌개 맛이 뛰어났다. 아깝게도 절인 깻잎은 손도 대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주인을 보니 깔끔한 매무새에 상냥한 표정. 첫눈에 사업수완이 보통을 넘는다. 나오는 길에 과일 상점에 들러 다디단 망고를 샀다. 가이드의 배려로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골목을 거쳐 숙소에 도착하니 그제야 네온사인이 하나둘 어둠을 밝힌다. 복음이 사라진 이국에서 성경을 펴고 은혜를 묵상하는 시간.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97호)에는 '필리핀 기행: 따가이따이'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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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필리핀 기행 '마닐라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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