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2(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여전히 기사의 설명은 불을 내뿜는다. 백색 병원을 끼고 돌며 독신자 아파트 앞을 지날 때는 유창하게 “bachelor thinker”라더니, 중국 사원 옆에 옹기종기 모인 젊은이들을 보고는 재밌게도 “free thinker”라면서 무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재차 캐물으니 “씨씨룽눅(see see look look)”, 곧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을 표현한 거였다. 우리 셋은 기사분의 넘치는 재치에 다시금 파안대소했다. 이때 쌍룡건설에서 완공한 빌딩이 보였다. 기사는 주저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코리아 쌍룡 시멘트 넘버 원”이라고 추어줬다. 열대성 강우인 스콜과 싸우며 기어코 해내고야 만 그 불굴의 투혼을 두고두고 높이 사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원룸 촌의 싼 가격을 알려주며 며칠 머물기를 권했다. 수상공원 라이언의 선전을 곁들이면서.

  도심에서는 마무리공사가 한창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 때마침 옆으로 이층버스가 지나갔다. 높고 기다란 몸집으로 도심을 달리는 품이 자못 의젓하다. 퇴근시간이 가까운데도 이상하리만치 밀리지가 않았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자동차를 살 수 있단다. 길목이든 대로든 날이 갈수록 막혀만 가는 우리네 교통사정과는 접근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저마다 예술미로 넘쳐난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최대한 크게 바짝 붙여짓지도 않았을 뿐더러 모양과 색상이 가지각색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ㄱ자, ㄴ자, ㄷ자, ㅁ자,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가정법원 앞을 바삐 걸어가는 근엄한 표정의 젊은 판사. 물론 기사의 귀띔이었다. 문득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클린 정부’를 향한 싱가포르의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인력자원부(Ministry of Manpower) 건물을 지나며 또 다시 기사가 ‘1달라’를 달라며 눈치를 살핀다. 구경거리가 즐비한 박물관 거리였다. 지하철역을 보니 ‘唐城坊’과 ‘中央城’. 같은 동양문화권이서 그런지 한자어의 느낌이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쳐지나간 대통령궁의 위용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정문에는 보초를 서는 경찰 네댓 명이 보일 뿐 그다지 위압적이지는 않다. 아쉽게도 정치적 실권자가 집무하는 수상 관저는 끝내 구경할 수 없었다. 거기서 얼마큼 가니 소시민들의 복도식 아파트. 외양은 수더분했으나 주위는 깨끗했다.

  시내 한가운데 관광이 점입가경이다. 차에서 내린 곳은 ‘센토사 공원’. 머지않은 데에 케이블카가 보인다. 가느다란 해안선을 따라 정성이 돋보이나 제주도의 한림공원만은 못하다. 열대잔디는 토종 금잔디와는 전연 다른 질감을 준다. 푸르긴 푸르되 푸근한 감이 없다. ‘실로소(Siloso)’ 해변을 걸으며 재빨리 사진기를 들이대는 기사분. 덩달아 즐거워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그의 프로정신에 연신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열정을 부러워하며 ‘워터 그랜드’로 갔다. 귓가에 한국어가 들렸다. 반가운 동포들을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때서야 비로소 살갗에 후텁지근한 한여름 날씨가 스며들었다.

  상주인구 530여 만 명. 이 가운데 무려 1/4가량이 외국인이란다. 아테네 이후 최고의 도시정원국가에서 이처럼 원활한 교통흐름을 보이는 데는 분별컨대 불법주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정된 탑승시각에 맞춰 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에 푸드 빌리지(Food Village)에 들렀다. 그림을 보고 언뜻 먹음직스러워 뵈는 걸 골랐다. 그러나 웬걸 상큼할 성싶던 코코넛 과즙이 밍밍하다. 온갖 고명을 얹은 뽀삐앙(국수)에 락사, 헛껏미라는 별식(만두 비슷함)이 나왔지만 역한 향내 때문에 도통 속에서 받지를 않았다. 우리네 장터에서 풍기는 구수한 잔치국수를 떠올리면 큰 오산이다. 아, 나의 험난한 인도여정을 알리는 조짐이련가!

  부랴부랴 공항에 당도하니 자로 잰 듯한 시각이다.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는 도합 99US달러. 흔쾌히 지불하고 나니 기사가 선뜻 국호를 새긴 볼펜 한 자루씩을 건넨다. 방문객을 위한 따뜻한 선물. 선진사회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번 택시여행의 주연은 기실 기사 양반이다. 서로 통성명하며 악수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상쾌하다. 이는 자칫 버릴 뻔했던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썼다는 흐뭇함이려니와 싱가포르에 대한 첫인상이 깔끔하게 각인된 탓이리라. 국가경쟁력 순위 세계 2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넘는 강소국. 우리는 언제나 이토록 국가관이 뚜렷한 택시기사를 한국문화의 전도사로 전진 배치할 수 있을까? <홈페이지http://johs.wo.to/>

※ 다음호(295호)에는 '필리핀 기행: 마닐라배이'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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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싱가포르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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