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꼬박 여섯 시간. 양털구름 속을 헤치고 망막을 파고든 물상은 풍요로운 남국의 풍경화였다. 기창으로 다가서는 일렬횡대의 수상가옥, 평화로이 떠있는 작은 배들, 새색시처럼 고운 자태의 콘도미니엄, 바둑판같이 가지런한 전원주택가, 적당한 높이의 빼곡한 빌딩숲까지 거의 모든 형상들이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다. 활주로 역시 열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 꾸며 놓았다. 미처 정렬하지 않은 거라곤 흩어져 사는 사람뿐이라는 사념을 가다듬는 사이 무거운 동체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족속은 역시나 한인들. 너나없이 급한 성정에 오늘날 이만큼 살게는 됐을망정 이제는 고쳐야할 약점이다.

  이윽고 바로 코앞에 펼쳐진 창이공항의 모습을 대하니 가슴이 설렌다. 우리의 인도행을 돕는 중간 기착지. 싱가포르(Singapore)의 국가 이미지가 ‘질서’라는 나의 고정관념이 하나둘 확인을 거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야산의 조림지마저 열과 오를 맞춰 진행할 정도. 오밀조밀한 수풀은 한결같이 울창하다. 신기하게도 그 틈새를 가로지르는 길들은 죄다 적색이다. 싱그러운 초록과 붉은 태양과의 조화로움. 난 그 극치의 미각을 적도의 하늘 아래서 맛보는 중이었다. 예측과는 달리 별반 무덥지가 않다. 온도는 높으나 습도가 낮아 의외라 싶게 쾌적한 느낌이었다.

  다섯 시간 가까운 공백을 의미 있게 메우리라는 우리의 계획은 버스 예약시간이 이미 지나버렸다는 공항직원의 한 마디로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좀 더 세세히 알아보니 일반택시를 이용한 투어는 아직 가능한 상태. 소정의 절차를 밟은 뒤 노란 완장을 두른 할아버지가 지정해 준 택시에 올랐다. 싱가포르에서는 손님을 택시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노인층이 담당하고 있다. 요금은 미터기에 근거한 달러 지불 시스템. 비록 두어 시간에 불과하지만 제주도 1/3가량의 면적이니 만치 웬만한 지형지물은 거지반 둘러보리라는 기대 속에 시내관광을 시작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뚫린 하이웨이. 혹자는 손바닥 만한 국토에 무슨 고속도로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분초를 다투는 첨단시대일수록 꼭 필요한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곧잘 다듬은 갓길과 중앙분리대에 심어놓은 이채로운 꽃들. 이 또한 푸른 잎과 어우러진 형형색색이었다. 분재하듯 예쁘게 가꾼 잔가지의 난초들, 기다랗게 이어지는 야자수 대열, 이파리가 늘씬한 팜트리의 행렬 등 거리마다 따가운 상하(常夏)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수목들로 가득하다. 특이한 건 고속국도 상에 오토바이 통행을 허용한다는 점. 그 사이 택시기사의 투박한 영어는 조국 싱가포르를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다. 순간 “아이쿠!”하는 소리에 앞을 보니 여기서도 무단 횡단하는 족속이 있었다.

  이곳의 강줄기는 일면 소담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작은 나라에 걸맞은 물줄기의 흐름에서 새삼스레 신의 섭리를 느낀다. 따라서 대체로 보도가 비좁다. 다운타운의 외곽은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다닐 너비. 하지만 요모조모 규모 있게 마무른 품이 볼수록 아기자기하다. 나라 자체가 섬이므로 뭍과 물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바닷물을 정화해서 이용하는 수영장,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요트 정거장, 수륙을 번갈아 돌아가는 놀이기구 등. 구불구불하지만 소통이 원활한 이면도로마다 ‘바비큐파크’를 비롯한 테마거리를 조성해 놓고는 외화벌이에 골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는 가는 곳마다 “플러스 원 달러”를 외친다. 물론 상냥하게 승객의 동의를 구한다. 이래저래 지불한 금액만도 음식값을 포함해 근 50달러. 그들의 기발한 상술이 못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불쑥 이광요 전 수상의 자국 내 위상이 궁금했다. 대답은 의외였다. 조국을 선진화하는 데 이바지한 공헌을 치하하기는커녕 대뜸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어디든 개발독재시대의 인물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가보다. 무슬림 신당과 인디안 사당을 지날 때 “What is your religion?”이라고 물었더니 ‘나는 중립’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기사의 경우 '캔트니스'라는 현지어를 포함해 공용어인 영어, 말련어, 중국어, 일어 등 무려 7개 언어를 쓰고 산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학력을 물으니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벌어진 입이 좀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때 기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매우 낯선 말이었다. 온 나라가 학력지상주의에 매몰된 채 불건전한 입시체제로 몰아가면서도 막상 영어 하나 속 시원히 트지 못하는 국내사정이 적잖이 부끄러워지는 시공이었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94호)에서는 '싱가포르 기행 <하>'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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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싱가포르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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