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아니 노을을 향한 나의 심상은 어쩌면 아예 깡말라 붙어 볼썽사나운 나의 초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지탱할 심줄 한 가닥 없이 탈진한 모종의 자아를 시험에 들게 하는. 하여 유혹의 화살을 물리칠 모순은 고사하고 스스로 당길 과녁조차 찾지 못해 줄곧 배회를 거듭하던 참이다. 하여 저녁놀의 감화는 눈으로 먹는 비타민. 그러니 병들고 지쳐 쓸쓸한 이들이여, 노을을 벗 삼아 치유의 씨앗을 뿌리고 거두어라.

  스스로 용인컨대 서로가 얽어맨 일상의 틀에서 뛰쳐나와 단호하고 냉철한 죄악의 불신을 일거에 잠재우려거든. 노을은 신께서 연출하는 다막다장의 희극인 바, 인간에게 내리는 위대한 예술이므로. 노을이야말로 보이는 제 현상에 대한 포용이고 아량이고 영원한 용서이거니와 삶을 정화하는 예리한 감동의 미소 띤 충고이면서 누구나가 한결같이 갈망하는 염원이어서다. 해서 이제 난 어정쩡해 말 못할 허술한 삶마저 노을처럼 보듬고 품을 요량이로다.

  시상(詩想) - 고독한 고백의 나열, 그로부터 훨씬 뒤 시상. 돌이켜보매 노을은 단단한 활력의 알속이었다. 삶의 견고한 과핵이자 과즙이었다. 그걸 따기 위한 나의 작업이 고작이었다. 탐닉의 도식과 상투의 답습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서였다. 높고 험한 성곽을 헐어내는 일만큼이나 숨 막히는 세루(世累)의 늪에서 매양 허덕였기에 이제는 성령이 묵시한 맑고 환한 웃음을 본받아 따라 웃으려 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픈 주체하지 못할 욕망을 좇아.

  커다란 시련과 도전. 이는 바야흐로 나대로의 통박과 단지 독설을 멀리한 채 무턱대고 끌고 당겼던 진실의 한 가닥이고 섬뜩한 매력이어서 일체의 가식과 위선을 거부하는 달관의 모퉁이였다. 태연자약하고 화애(和愛)로운 피안. 첨예하면서 미끌미끌 무뎌터진 언어이 고팠고, 조그만 소망에 동참함으로써 나의 보잘것없는 본말을 딴에는 꿰뚫어볼 심산이었다. 비록 태초의 노을처럼 따사로워 그냥 그리워할 수는 없을지언정.

  심원한 완결을 향한 사무친 기웃거림. 묘사가 뛰어나고 생생한 나머지 심장까지 와 닿는 표현은 못 된다할지라도 나의 정신적 탐험을 기반으로 굳건한 화석으로 일구면 그뿐일 터이며, 섬세한 조율을 동원해 은유하지 못해도 왕성한 필봉으로 밀도를 다했다면 족하리라. 높다란 담벼락 너머 쑥스러운 아픔 너머 사족의 절규랄까. 떫고 아린 서투름에 끝내는 괴리의 끝자락까지 곪아터져 패이고 더쳐버린 생채기였으므로.

  한 영혼의 지난한 궤적을 새삼 되돌아보는 시공. 그리 풍성히 서술을 반복해 갖은 고초와 역경을 소화하며 헤쳐 온 발자취였다. 선명한 편협으로 오염되지 않고 나름 솔직한 여백을 불투명한 유리잔 위에 떨어뜨려 깨뜨리지 않으려고 말이다. , 몰아지경의 황홀경. 그 앞에서 한갓 형용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도취뿐이었음을 단박에 시인한다. 바로 거대한 노을이 위대한 소이(所以)였다. 한사코 거부할 수 없는. 홀리고도 홀린 줄 모르는 지경에 서서.

  요동치는 정맥을 파고드는 파동. 그 맥박을 타고 다다른 곳이 있었다. 저만치 다가온 내 이상의 촉매. 어느 시인이 그린 허공처럼 진정 하늘 한쪽을 도려내어 혼자서만 품고 싶은 그런 공간이었다. 다만 반짝이거늘 홀가분한 비약의 구석에서 울어 지친 호소였으면 솔깃하여 그러했다. 후미진 진실의 하소연을 목하 독백이라고 외치고 싶어서였다. 불현듯 헐떡이는 심장에 매달려 깊고 맑은 사랑의 연가를 목청껏 외치는 모양새로.

  노을은 단아한 사랑의 빛깔. 아로새겨 조탁되는 빛의 강. 우주 공간의 운치 어린 고요. 빛송이로 번지는 여운. 에덴 가운데서 돌아온 메아리, 성스러이 채색한 감명의 빛. 나는 여울진 은하의 폭포수에 내내 눈이 부셨다. 쌓여가는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한 채 순백색 시심에 거푸 흔들리던 동심이었다. 따뜻한 대기가 숨을 쉬었기에. 꺼져가는 공허가 아쉬워 아집을 거론하고 달아나는 독선과 타협해 소신을 들먹이는 무리여, 부디 이내 입말을 들을지어다.

  뒤덮은 건 부끄러운 자아의 해 그림자. 먼지 낀 신의식에 눈멀었기에 줄곧 놀빛에 묻혀버린 박석(薄石)이었다. 태고 적 믿음의 시원(始原)을 잊고 소망을 잃고 사랑에 고픈 맥박이었다. 돌이켜보니 남몰래 시심을 배워 무릇 천석고황(泉石膏肓)을 쌓은 연고. 애달픈 죄인 곁에 일던 바람 차게 불어와 선한 빛을 보았은즉 그 빛은 구원의 길, 영생의 줄기였어라. 때마침 더께 낀 원죄의 둥지를 박차고 천성을 향하는 어린 양처럼. <홈페이지 http://johs.wo.to/>

다음호(293)에는 '싱가포르 기행' 첫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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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노을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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