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별반 기대하지 않은 <장유와인박물관>. 전시실은 역사실, 영상실, 서예실, 진품실 등으로 나눠있다. 잠시 예쁘장한 아가씨의 설명을 듣고서 지표면 아래에 위치한 지하창고로 내려갔다. 늘 섭씨 14도의 온도와 70~80%의 습도를 유지하는 곳. 저장실에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오크통도 있다. 땅속 최적의 깊이는 7m. 보관량이 무려 2만 병이라는 소리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고대하던 시음할 차례. 하지만 평소 음주를 멀리하기에 내미는 백포도주와 적포도주에서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했다. 내게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전혀 없으므로. 밖으로 나오니 매끄러운 노면에 낮은 경계석이 눈에 띈다. 멀끔한 도시 경관. 주위를 둘러보니 영락없는 유럽풍이다. 일행은 30여 분간에 걸쳐 해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여기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국제해수욕장>. 모래알이 밀가루같이 고왔다.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보호하느라 펜스까지 쳐놓았다. 물가에서 제자들과 어울린 소재는 물수제비놀이. 매끈한 잔돌에 숨어있는 잔재미가 쏠쏠했다. 시선을 바다에 둔 채 다소 멀리 보고 수평을 유지하며 던지면 꽤나 멀찌감치 통통 튈 것을 너무 가까이 보고 마치 지평선인 양 바닥을 치니 가다가 지레 빠지고 마는 게다. 나의 경우 일렁이는 바다여서 거개는 7~8회 정도에 머물었지만 내륙을 흐르는 강물에서는 13회까지 기록한 적이 있다. 검푸른 바다와 녹지를 결합한 야심작. 남녀노유를 위한 놀이시설에 운동시설을 갖춘 명소였다. 따라서 다양한 유형의 친환경 문화공간을 창출했다고 홍보한들 결코 무리가 아니다. 편안한 휴식처를 만드는 당국의 노력에 힘껏 갈채를 보내고 싶다. 35층짜리 아파트단지를 지나며 마주친 연대자연박물관은 냉큼 들를 수는 없었으나 왠지 전시물이 궁금했다.

  위해시내로 되돌아가는 길. 아까 본 그대로건만 차창에 비치는 풍광이 새로웠다. 여유 있게 도착한 <환취루공원>.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시민공원이었다. 이네들이 영웅으로 여기는 정여창 장군의 동상을 등에 업고 오르는 계단. 제법 가팔랐다. 그를 기리는 연유를 찾아보니 패색이 짙던 청일전쟁에서 부하를 살리려고 항복한 뒤 자결을 감행한 충심을 높이 사고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명품 중 명품. 문제는 또 어리바리한 가이드였다. 매표소를 몰라 기껏 계단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해프닝을 연출하다니 쯧쯧! 언뜻 오사카성을 빼닮았다는 아들의 해설을 들으니 과연 그랬다. 탑처럼 생긴 지붕의 무게 중심을 분산시키려고 기둥을 다포(多包)양식으로 지었단다. 아래를 굽어보니 유럽의 여느 마을 못지않다. 벽에 걸어놓은 1933년의 위해 사진. 곰곰이 뜯어보니 오늘날과 잇닿아 있었다. 무려 70년이 흘렀음에도 앞바다를 끼고 뒷산을 두른 채 골격은 그대로여서 도시의 그림이 흡사 조각전시장 같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서둘러 간 곳은 중소기업국 내 <짝퉁시장>. 자신을 낳은 생모를 빼고는 몽땅 가짜라는 걸 증명하듯 진짜를 방불한 물품들로 가득했다. 우습게도 감독관청인 시청사 바로 옆. 평소 쇼핑에는 별 관심이 없는 우리 부자만 빼고는 모두들 선물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수십 개의 컨테이너박스를 동원해 미국으로 수출할 만큼 품질(?)이 뛰어나 물을 건너간 직후에는 감쪽같이 진짜로 둔갑한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맞다. 거리에는 한글 간판의 변호사 이름도 보였다. 위해는 이제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상대하며 돈을 벌 만큼 틈새시장이 형성되었다. 저녁은 한식. 재밌게도 상호가 ‘장모님한국요리’였는데 손맛이 신통치 않았다. 숙소에 든 초저녁, 아들은 홀로 야경을 감상하겠다고 나서고 아비는 뉴스를 보는 걸로 대신했다. 한 시간 남짓이 흐른 뒤 함께 시편을 묵상하고 기도를 드린 다음 곧바로 단잠에 빠져들었다.

  어제 식단에다 파인애플이 추가된 아침식사. 중국에서 이만한 호텔에 묵은 건 축복이다. 부랴부랴 적산으로 향하는 길. 이번 여행의 주목적인 장보고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빽빽한 가로수. 극심한 안개만 아니라면 금상첨화였을 게다. 그래서인지 거꾸로 곡예운전을 일삼는 무리가 자주 나타났다. <적산법화원>은 서기 832년 신라인 장보고가 건립한 사찰로써 적산포(赤山浦)는 그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나·당·일 삼국을 잇는 교역의 중심지. 일본인 엔닌[圓仁]법사가 여기서 도를 닦아 오늘날까지 한중일의 역사적 상징처럼 남아있는 처소다. 신라인이 당나라에 세운 대표적인 절집. 아침햇살에 비친 산자락이 붉게 보여 적산(赤山)이란 지명을 붙였다는데 경내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읽게 하여 ‘적산법화원’이라고 명명했단다. 돌아보니 극락보살계니 삼대 부처니 공기는 숙연하지만 실은 드라마 ‘해신’의 촬영지로 더 알려져 있다. 거슬러 올라가 장보고가 서주(지금의 강서성)에서 무령군의 군중소장(약 5,000명의 수하를 거느림)으로 있을 때 당나라 장군들의 주목을 받았고, 신라로 귀국한 뒤 해상 실크로드를 열어 걸출한 무역가가 되었다는 게 줄거리다. 초청된 대종파의 승려가 처음 읽었던 불교경전이 ‘법화경’이어서 <적산법화원>이라고 했단다. 건축은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기록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당나라 양식. 그 중 대웅보전은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써 그 안에 안치한 석가모니 소상은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솜씨를 자랑하는 작품이란다. 하지만 생명이 없는 우상을 붙들고 주야장천 씨름하다니 안타깝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82호)에는 중국 사제동행 마지막 이야기 <장보고 유적>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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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사제동행 '환취루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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