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하릴없이 아들과 둘이서 호텔방을 나왔다. 해변을 따라 펼쳐진 <행복공원>. 2000년 6월 정식 개장했다는데 1.4km 길이에 녹지대, 조각물, 건축물 등을 유기적으로 조합하였다. 무릇 자연친화적인 공원개념을 충실하게 구사했다는 평판이 주류. 식당을 겸한 행복문을 중심으로 관광, 레저, 오락을 종합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이빈난로를 경계로 동서 양측에 문화광장을 조성하여 각각의 주제를 담은 조각품과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심어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로 기능할뿐더러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과 노인들을 위한 신체단련 기구들을 마련해 놓았다. 워낙 주변 환경이 깨끗하다보니 삼삼오오 짝지어 걷는 사람이 많다. 전체적으로 청결하고 쾌적한 느낌도 그렇거니와 그리 복잡하지 않으면서 갖가지 얘기를 품은 자태가 한껏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어림잡아 두 시간 안쪽. 날로 척박해지는 도시환경에서 오랜 만에 누린 호사였다. 그래서일까? 위해는 여생을 보내기에 그만인 터전으로 정평이 나있단다. 다만 갈수록 치솟는 생활비는 풀어나갈 숙제. 전세는 아예 없고 월세를 계절별로 묶어내는 집세 또한 이채롭다. 이를테면 얼마큼 보증금을 걸고 몇 개월에 한 번씩 사글세를 내는 방식이란다. 거리에는 한글 간판이 유난히 흔했다. 다소 이른 저녁식사. 된장찌개, 오징어볶음, 콩나물무침, 면발이 굵은 잡채, 갓김치가 나왔으나 간이 좀 짠데다 손님 대우가 시원치 않아 권할 만한 업소는 아니다. <야시장>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 그대로였다. 쌀쌀한 날씨에 별반 특색 없는 잡화상이 대부분이어서 구매의욕을 끌거나 하등 구미를 당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취급하는 품목이 날마다 바뀐다지만 이렇다 할 풍물이랄 게 없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역한 냄새를 피해 옆길로 한 바퀴 돌고나니 금세 피곤이 몰려왔다. 이국에서 시청하는 국내 뉴스의 묘미. 아들과 감사기도를 올린 뒤 잠을 청했으나 아내가 곁에 없어서인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도심에 자리한 숙소는 깔끔했고 호텔식은 훌륭했다. 여태껏 먹어본 요리 가운데 단연 으뜸. 쌀죽, 만두, 생선, 김, 김치, 삶은 달걀, 고구마, 각종 빵에 갖가지 과일을 곁들여 배불리 먹었다. 추운 겨울에 비싼 수박이며 멜론에 방울토마토(이튿날에는 파인애플 추가)까지 실컷. 차창에 비친 체육장과 체육관의 차이는 뭘까? 전자는 운동장이고 후자는 건물이었다. 토양이 기름져서인지 나무들이 죄다 싱싱하다. 여기는 사과와 앵두, 옥수수와 밀의 주산지란다. 속력을 내던 버스가 방금 아기자기한 놀이동산을 거쳐 강물을 건넜다. 허름한 양어장을 지나니 광활한 대지. 다만 내달리는 내내 시야는 흐렸다. 공장지대가 곁에 있으니 얼마간의 스모그는 어쩔 수 없나보다. 군데군데 측백나무를 조림한 건 그래서였다. 후줄근한 톨게이트. 그 옆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윽고 연대시내. 한눈에 청결했다. 상주인구는 180만 정도(역시 사전에는 650만 여명으로 나옴). 녹지를 최대한 살린 조경. 아파트의 외관도 다양하다. 더욱이 보도블록의 시공 상태는 놀랄 만했다. 이어진 <해변공원>. 첫눈에 설계한 구도가 시원스럽다. 곧바로 나타난 연대대학교(YanTai University) 정문. 위해에서 본 산동대학교 분교(본교는 제남에 소재)와 비슷했다. 두 눈에 비친 옌타이는 볼수록 고풍스런 경관. 한때 영국의 조차지(1858년 톈진조약으로 서양 제국에 동시 개항되었다가 1876년 영국과의 즈푸조약에 의해 반환됨)였다더니 아닌 게 아니라 구택과 현대 주택의 조화가 일품이다. 200년 이상 된 고택들을 제대로 보존한 사실만으로도 명승지의 주가는 올라갈 만하다.

  오늘의 주제는 <연대산 공원>. 삼면이 바다인 반도에 위치한데다 산과 항구가 한껏 어우러져 독특한 풍치를 자아냈다. 미국과 일본의 영사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을 지나 들어간 곳은 <경극 전시관>. 연극에 쓰인 각종 소도구며 활약한 명배우들을 잔뜩 소개했는데 요즘은 관객이 줄어 아쉽게도 그 시효를 다해가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국가에서 풍경구로 지정한 데는 1958년 16개국에서 앞 다퉈 영사관을 설치할 만큼 해안가의 경치가 범상치 않아서란다. 그러니 영국식 화원이 멋지게 들어선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 자존심 강한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분명 치욕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보존하는 품이 대국적인 배포를 드러내는 터여서 글쓴이의 눈에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연신 향불을 피워대는 재신전(財神殿)이나 용왕을 모신 잡신전이나 마귀 한통속인 건 매한가지로되 동서남북을 알리며 드높이 봉화대를 지어올린 건 나름 뜻이 깊어 뵌다. 명대에 접어들어 이곳에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면서 봉화대를 세우고 연대(煙臺)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단다. 제법 차가운 갯바람을 쏟아내는 바닷가를 걷다보니 출렁다리에 자물쇠가 즐비하다. 교제할 때는 마냥 좋아라고 재잘거리는 연인들이건만 오죽이나 서로를 믿지 못했으면 저런 정표들을 매달고 갔을까? 현재 연대산 공원에는 각국 영사관, 항일열사기념탑, 석선, 돈화대 등이 있는데 눈앞에 일렁이는 흰 물결을 바라보며 오솔길을 걷노라니 어느새 약속시간이었다. 해발 42.5m의 해안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연대산 공원은 앞서 1858년 개항한 이래 영국, 프랑스, 일본 등 16개국의 영사관, 교회, 우체국 등 신식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중국의 주요 역사문화 유적지였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81호)에는 중국 사제동행 세번째 이야기 <환취루 공원>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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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사제동행 '연대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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