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 진정한 지도자란

 내가 장편소설 <우리들의 천국>을 집필할 때의 이야기다. 작품 때문에, 민족의 영지 참성단에 오르기 위해, 강화도에 간 적이 있었다. 계단식으로 조성된 마리산(마니산)을 비지땀을 뻘뻘 흘리고, 팍팍한 다리를 주먹으로 퍽퍽 두드리며, 힘겹게 올랐다. 그렇게 등산한 보람이 있었다. 네모, 세모, 원으로 만들어진 참성단에 올라 주위를 조망하니, 바다를 접하며 여기 저기 우리네의 살림살이가 올망졸망 쫙, 펼쳐져 있었다. 여기서 단군왕검부터 역대 제왕에 이르기까지, 임금들이 몸소 참성단에 올라 억조창생들 보살필 각오를 새로이 했을 것을 생각하니, 새삼 옷깃이 여미어졌다. 그곳에서 한동안을 머물다 하산했다. 

 입구에서 잠시 쉴 때였다. 어느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참성단에 참배를 온 모양이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패목이 하나 박혀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이 밑에 있는 모래주머니를 위 200m까지만 하나씩 운반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모여 이 산이 지켜집니다.> 얼마 전에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왔다. 그래서 산의 위쪽에는 패인 곳이 많았다. 그곳을 모래로 채워 넣을 요량인 것 같았다.

 나는 무심코 학생들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등산을 시작할 때의 나처럼, 팻말에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음인지 그냥 올라갔다. 몇몇 학생들은 글을 읽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픽 웃어 버리며, 앞의 학생들을 따랐다. 얼마가 지나서였다. 그곳을 지나던 한 인솔교사가 패목의 글귀를 보고 말했다. 모두 하나씩 들어라. 말뿐이었다. 선생은 빈손으로 등산했다. 그를 따르는 학생들은 대부분 모래주머니를 들지 않았다. 선생의 곁에 서 있었던 관계로, 마지못해 그것을 집었던 학생들도, 조금을 오르다 모두 내팽개쳤다.

 한 깡마른 선생이 그 곁을 지나고 있었다.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패목에 붙여진 문안을 읽더니, 손수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위를 향하여 비척비척 오르는 거였다. 그때부터였다. 그의 뒤를 따르는 학생들은 모두 묵묵히 그것을 들쳐 메고 등산했다. 얼마 후, 쌓여 있던 모래주머니는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탁 쳤다.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설 자리를 거기서 발견한 거였다. 가정에서든, 사회나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너저분한 아전인수식의 말이나, 교묘한 감언이설로 자신과 타인을 속일 것이 아니라, 말없는 솔선수범, 바로 그것이 타인을 이끄는 길이요, 자신과 타인을 함께 구하는 첩경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 방영주 소설가·시인 약력

 <월간문학> 소설 당선, 소설집 <거북과 통나무> <내사랑 바우덕이> <카지노 가는 길>, 장편소설 <무따래기>(상·하권) <우리들의 천국> <카론의 연가> <국화의 반란> <돌고지 연가> <대무신왕> 등,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연락처 ☎ 011-227-0874, 주소: 450-760 경기도 평택시 평남로 281 삼성(아) 105동 805호, 이메일: youngju-5@hanmail.net)

※ 방영주 소설가·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 '소설가 방영주의 세상만사(世上萬事)'가 연재됩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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