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최소 3년 이상 최대 60년간 종자은행 유지하는 생존력 지닌 ‘녹색 저승사자’

평택시민 건강 및 생태계교란 생물에 대한 경계심과 체계적 관리 뒤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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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어떤 일이나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영하의 날씨를 오가는 11월 중순, 진위천 수계의 상수원보호구역이나 소풍정원 제방길 혹은 통복천 인도나 안성천변을 걷다 보면 경사면을 따라 풀밭을 완전히 점령한 것도 모자라 주변 나무를 타고 올라 나무 전체를 감싼 너무도 기괴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얼어붙지 않을 사람은 없고, 놀라움과 함께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침이 없는 식물이 있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이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보다 식물계의 공룡


주변 곤충으로부터 토종 개구리와 뱀 그리고 먹이사슬 상위에 있는 조류와 포유류까지도 잡아먹어 생태계의 무법자, 파괴 주범으로 이름을 드높였던 황소개구리의 세력이 언제부터인가 잦아들면서 생태계가 나름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가 했더니, 지금은 ‘식물계의 황소개구리’인 가시박으로 인하여 전국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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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물의마당 아래쪽 능수버들을 타고 올라 엄청난 종자를 달고 있는 가시박(2023.11.6)

 

가시박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주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최대 8m까지도 덩굴줄기를 뻗어 오이 혹은 호박을 닮은 넓은 잎으로 주변 식물을 빠르게 뒤덮는다. 특히 여름철에는 하루 30㎝ 이상 자라고 있는 덩굴이 보일 정도로 생장 속도가 빨라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주변을 덮어 그늘에 묻힌 식물들은 햇빛을 받지 못해 고사하고, 10m 이상까지도 휘감고 올라가 조팝나무와 족제비싸리 같은 작은키나무로부터 가죽나무와 아까시나무 같은 큰키나무까지도 햇빛을 차단해 질식시키는 등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산과 들에서 야생식물 종자 채집에 평생을 바친 강병화 교수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공룡시대에는 다른 동물들을 공룡이 다 지배했다면 오늘날 가시박이 다른 식물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가시박을 ‘식물계의 황소개구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식물계의 공룡’이라고 불렀다. 실제 가시박의 위력은 황소개구리를 훨씬 뛰어넘는 비교 불가의 공룡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3~4갈래로 갈라진 덩굴손이 주변의 다른 물체를 감고 기어올라 이내 그곳을 호박잎 크기의 잎으로 겹겹이 덮게 되면 광합성을 방해함으로써 아래쪽 식물을 광범위하게 고사시킬 수 있어 주변에 공룡보다 더 공격적이고 큰 세력을 지닌 동물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 이름을 본땄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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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잎돼지풀 꽃가루가 한창 날리고 있는 습지데크 산책로를 이용하고 있는 방문객(2022.9.10)

 

◆ 생태계교란 생물 가시박


생태계교란 생물이란 외국으로부터 인위적 또는 자연적으로 유입되어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큰 것으로 판단되어 개체수 조절 및 제거, 관리가 필요한 야생생물로, 2023년 현재 환경부가 지정한 종으로는 포유류 1종(뉴트리아), 양서·파충류 7종(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속 전종, 악어거북 등), 어류 3종(파랑볼우럭, 큰입배스, 브라운송어), 갑각류 1종(미국가재), 곤충류 9종(꽃매미, 붉은불개미, 등검은말벌 등), 식물 17종(단풍잎돼지풀, 가시박, 환삼덩굴 등)으로 총 1속 36종인데, 육상생태계에 가장 피해를 많이 끼치고 있는 종을 들라면 단연코 가시박일 것이다.


가시박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한해살이 덩굴식물로, 1990년을 전후하여 수박과 오이의 접붙이기용 대목으로 국내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잦은 공사와 장마철 범람이 반복되는 하천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들은 다른 식물이 햇빛을 받을 수 없게 하여 그들을 말라 죽게 하거나, 타감작용이라 하여 자체적으로 특별한 화학물질이 생성되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거나 죽이는 등 주변 생태계에 큰 피해를 줘 ‘생태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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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동산마을숲의 물오리나무를 타고 5m 이상 오른 가시박 덩굴(2019.2.16)

 

열매의 모양이 가시를 달고 있는 박을 닮아 이름을 얻게 된 가시박은 기본적으로는 하천의 범람을 통해 종자를 매우 넓게 퍼트리고 있지만, 도꼬마리 혹은 도깨비바늘처럼 열매에 난 가시를 이용하여 세력을 더욱더 넓히고 있다. 사람의 옷은 물론이고 냇가 풀밭에서 만나게 되는 너구리와 고라니 심지어는 하천변 마을숲에서 번식하는 백로류의 털에 붙어 무임승차한 후 덕동산마을숲, 근내리마을숲, 배다리생태공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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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개가 뭉쳐서 나며, 흰색의 뻣뻣한 가시털로 덮여 있는 가시박 열매(2008.11.8)

 

◆ 배다리생태공원의 생태계교란 야생식물


환경부에서 지정한 생태계교란 생물 중 식물에 해당하는 것이 모두 17종인데, 이 중에서 배다리생태공원에서 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은 모두 6종이다. 처음엔 호박이려니 하고 버려뒀지만 이내 주변 나무와 풀숲을 넓고 높게 점령한 가시박, 3m 전후의 키에 가을철 대표적 알레르기성 식물로 이름난 단풍잎돼지풀, 평택 전역 아무 곳에서나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는 네발나비의 먹이식물인 환삼덩굴, 줄기와 잎에 강한 가시가 있어 가축들조차 접근을 꺼리는 도깨비가지, 많은 수의 종자로 주변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미국쑥부쟁이,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식물로 쓰레기 같은 풀이라는 뜻을 지닌 돼지풀 등이 다년간의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2022년 하나님의 교회 아래쪽에서 무리를 지어 4m까지 자라고 있던 단풍잎돼지풀에 힘들었다면 올해는 배다리 물의마당 아래쪽 능수버들을 타고 올라 엄청난 수의 종자를 퍼트리며 세력을 넓힌 가시박으로 다시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것이다. 단풍잎돼지풀이 생태계교란성과 함께 알레르기 유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가시박은 최소 3년 이상 최대 60년간 종자은행을 유지할 수 있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생존력을 지닌 ‘녹색 저승사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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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위천변 자생식물을 고사시키고 있는 ‘생태계 저승사자’, ‘식물계의 공룡’, 가시박(2018.9.21)

 

사람을 위한 공원 관리도 중요하지만, 평택시민의 건강과 함께 생물다양성에 관련 있는 생태계교란 생물에 대한 경계심과 체계적인 관리 또한 시급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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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식물계의 공룡 ‘가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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