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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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감미로운 애창곡을 들으며 내닫는 길에 펼쳐진 몽골의 대초원! 그 한가운데서 만난 드넓은 밀밭이 있었다. 거기서 건진 이시화 교수의 “황금 밀바다”라는 즉흥시를 어찌 감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랴.

몽골의 광활한 밀바다 / 황금빛 물결이 끝없이 펼쳐져 / 하늘과 맞닿아 있네. // 끝없이 펼쳐진 황금의 천국, / 밀의 숨결이 바람에 흔들리며 노래한다. // 산뜻한 공기를 타고 스며드는 / 밀 향기는 우리 마음을 취하게 해. // 이곳에서 함께한 / 따뜻한 친구들의 웃음소리, / 즐거운 대화, 따뜻한 배려, 시간이 / 멈춘 듯한 황홀한 이 순간! // 끝없이 밀려오는 황금빛 밀 바다의 / 황홀한 풍경과 행복한 시간 속에서 / 하나가 된 이 순간, 영원히 기억되리라. ( / 행, // 연을 가리킴)

응당 멋진 시에 대한 조하식 시인의 3행시(이시화) 화답이 빠질 수는 없었다.

이국 땅 몽골의 하늘 아래 / 시심에 담긴 순정을 보니 / 화폭에 그린 사랑이구려!


마치 경주를 지키는 왕릉처럼 이어지는 산맥의 능선은 정겨운 풍경화의 향연. 펑퍼짐한 벌판에 난 샛길의 곡선미도 눈여겨볼 만했다. 희고 검은 양 떼가 평화로이 노니는 들판을 보며 흡사 흑백의 돌들이 자웅을 겨루는 바둑판을 떠올렸는데, 국유지가 무려 80%에 달한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 건 왜일까? 남한의 15배가 넘는 면적에 1억 마리에 달하는 사육동물(양, 말, 소, 염소 등)을 비롯해 각종 지하자원(우라늄, 금, 구리, 희토류 등)의 매장량이 풍부해서 앞날이 밝다는 전언이다. 그래서 나온 제안이 한·몽 연합국가 구상이었다. 한국의 인력, 자본, 기술에다가 몽골의 영토와 자원을 결합하면 상생을 추동하는 시너지가 분출할 거라는 제안이었으나 CU가 300여 개소, GS25가 150여 개소, 이마트가 네 번째 문을 여는데도 현실적으로는 불가하다는 게 중론이 되었다. 남양주 거리를 거쳐 도심에 다가올수록 난개발로 몸살을 앓는 본새를 대하는 마음이 좀 불편했는데, 가이드에게 한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온 연유를 들어보니 웬일인지 350만 몽골인들의 장래에 대한 노파심이 일었다. 까닭인즉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기보다는 실시간 사막화를 막아내고 장차 뉴질랜드 같은 낙농 선진국을 지향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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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칙트하드 게르를 품은 몽골 초원의 한 장면

 

세차게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숙박업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게르 옆구리에 화장실을 매달고 보일러도 모자라 난로에 갈탄을 때는 곳도 있었다. 문제는 실내에 가득한 일산화탄소의 폐해. 필자는 왜 이들의 평균수명이 고작 60대에 머물러 있는지를 몸소 겪어야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배수구를 찾기 어려운 점도 같은 맥락. 고인 빗물에 곤죽이 된 흙탕물이 말라 흩날리는 뿌연 먼지 또한 대기오염원이다. 몽골인의 진정한 자존심은 칭기즈칸 기마상을 찾아가 맘껏 기상을 펼치는 일과 함께 시간을 정해 여럿이 말갈기에 차례로 올라타 보는 질서의식이 아닐까? 허르헉이라는 특식에 대해서도 보탤 말이 있다. 십 년 전 맛본 현지인의 요리를 소환하면 연한 양고기를 항아리에 담아 달군 돌로 충분히 익혀 씹을 때마다 담백한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누린내 나는 질긴 고기에 소금을 풀고 밑반찬도 아까워 짜게 만든 꼼수라니, 그보다는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싱싱한 상추쌈을 실컷 즐기게 해준 ZALAAT 식당 주인을 양심적인 한국인으로 강력추천하고 싶다.


연초록과 갈색 톤의 오묘한 조화, 그러나 이 나라 수도는 어느덧 회색빛 콘크리트 정글로 변해버렸다. 이번 몽골여행에서 필자가 가장 놀란 건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본 사물놀이도 아니요, 랜드마크인 거북바위나 난코스가 포함된 승마체험도 아닌 독립 영웅들을 기리는 자이승 승전기념탑 전망대였다. 실로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광경.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툴강을 끼고 자리한 빼곡한 택지는 이미 과포화 상태였는데, 근현대사 공간을 신설한 몽골국립박물관의 자료를 통유리를 통해 들여다보는 일에 의미를 두려면 주도면밀한 국토개발계획이 절실한 시점이렷다. 그밖에 세계 정상급이 머무는 칭기즈칸 호텔에서의 하룻밤이나 아침 일찍 찾은 아리아발 사원은 새벽사원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고즈넉해서 좋았고, 독특한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테를지 국립공원의 목가적 풍광이야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의열단을 이끌며 독립운동에 앞장선 이태준 열사의 희생적 업적이리라.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8호)에는 ‘생태적 삶을 위한 역제안 - 생태적 삶이란 무엇인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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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몽골 초원의 재발견 ‘몽골의 값진 자원은 대자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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