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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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필자가 처음 몽골을 찾은 때는 대략 10년 전(2013.9.18.~9.23.), 한가위 연휴를 맞아 아들과 함께한 단기선교의 일환이었다. 평택콜로키움에서 추진한 이번 행사에는 곁에 아내가 있으니 명실공히 구색을 갖춘 셈이다. 평온한 여행을 위해 새벽기도를 드린 뒤 출발한 여정은 애써 준비한 손길들에 힘입어 일사천리.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안착하니 번듯한 신청사도 놀랍거니와 신도로의 승차감은 몽골의 대변신을 예고하는 듯했다. 한눈에 잡힌 울란바토르시의 급격한 변화상. 160여만 명이 운집한 시가지를 피해 엘승타사르하이라고 불리는 미니고비로 가는 동안 나는 연신 차창밖에 비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짬짬이 채우는 기록장에는 “샌배노(안녕하세요), 바이를라(고마워요), 바이르테(안녕히 계세요)”라고 적혀있다. 김범수 교수의 당부로 특별 가이드를 자처한 ‘부재’(몽골어 음가는 ‘푸재’로도 들림) 사장은 서울대 유학생 출신으로서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요, 받침에 약한 발음은 일본인을 방불했다.


이흐몽골과 헉나칸산 사이를 가득 메운 사막에서 낙타를 타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언뜻 보아서는 점잖은 걸음걸이여서 쌍봉을 꽉 잡고만 있으면 별일이 아닐 듯한데 실상은 큰 덩치로 인해 좌우로 흔들리는 폭이 넓어서인지 네 발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 적잖이 무리가 따랐다. 가까스로 20여 분을 참아낸 나는 반환점에서 결단을 내렸다. 낙타 고삐를 냉큼 가이드에게 건넨 뒤 밀가루 같은 모래사장을 밟으니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기는 힘들어도 발바닥에 와 닿는 촉감은 더없이 부드러웠다. 곧장 평소 동물과의 접촉을 꺼리는 아내와 합류해 모래밭에 자생하는 풀포기를 주의 깊게 살펴본즉 잔뿌리를 깊숙이 내렸다. 걱정스러운 건 여기저기 거센 바람결에 휩쓸린 흔적들. 이곳 역시 실효성 있는 보호책이 시급한 지점이었다. 이어진 샌드보트(모래썰매)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예 타지 않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각거리지 않는 모래언덕의 성질상 미끄러지듯 내달리기는 거지반 어려운 형편. 나오는 길에 잠깐 유목민의 집에 들러 시음한 수태차는 손님을 극진히 모시는 꼬마가 있어 질박한 감동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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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승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변화상

 

비칙트하드 게르에서 머문 첫날 밤, 해외여행 중 부부가 떨어져 잠든 첫 사례였다. 잔뜩 기대했던 별자리마저 하늘에 놔둔 채 옛 수도로 향하는 길. 그 도중에 유채꽃이 만발한 곳에 내려 노란 들판을 가슴에 담았다. 카라코룸은 오래전 다녀온 지인에게서 전해 들은 바로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더니 칭기즈칸 후손의 유지를 받든 당국의 적극적 이주 계획에 따라 어느새 상주인구가 13,000명에 이르고 있단다. 그나마 번듯한 관공서(시청, 경찰서, 학교 등)에서 주거단지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나름 위용을 갖춘 카라코룸 박물관에는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를 표시해 놓았는데 서울까지는 2천km가량, 기록을 남기지 않은 몽골족의 특성상 전시품 가운데 특별한 건 없으나 드물게 글씨를 새긴 비석을 볼 수 있었고, 박물관 건립에 자금을 보탠 일본의 발빠른 행보가 눈에 띄었다. 곧바로 에르덴조 사원을 거닐어본 감회 또한 색달랐다. 라마교의 건축양식을 본뜬 사찰을 비롯해 동물 형상의 석상들이 늘어선 통로에 군데군데 담장을 장식한 흰 돌탑들이 나그네의 눈길을 끌었다.

 

기원후 683~734년의 역사를 정리했다는 빌게강 박물관을 뒤로한 채 어젯밤 머문 숙소에 다시금 들러 뒷동산에 오를 기회를 잡은 건 행운이었다. 언덕배기에서 자라나는 야생화는 물론 바위산 뒤편에 펼쳐진 초원이야말로 그대로 천연 잔디 구장. 꼭대기에서 탁 트인 사방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 내려오며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진 건 나뿐이었을까? 서둘러 도착한 노마디크 캠프에서는 굵직한 영화 촬영이 막 끝난 뒤였다. 그 이튿날 선보인 호스 타이노 야생말의 생태. 여느 때 마부들의 역할과 전통 생활방식은 물론 질서정연하게 이주하는 모습이며 마상에서 펼치는 묘기에 이어 마두금이 이끄는 3인 연주를 통해 울림과 감흥을 받은 몽흐 텡게르에서의 체험은 흥미로웠다. 다만 필자의 경우 숨이 막힐 것 같은 실내공기에 잠이 깨는 바람에 한 시간 이상을 환기하고 나서야 부족한 잠을 청했으나 막상 놓친 숙면을 보상해준 건 큼지막한 별자리였다. 난생처음 손에 잡힐 듯 바로 앞에서 바라본 북두칠성의 자태. 돌이켜보니 유년 시절에도 이처럼 가까이서 밤하늘을 품속에 꼭 안아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 몽골 초원의 밤을 노래한 ‘총총총 별이불’처럼….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7호)에는 ‘몽골 초원의 재발견 - 몽골의 값진 자원은 대자연’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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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몽골 초원의 재발견 ‘몽골이 마주한 변화의 바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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