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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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병폐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이른바 ‘갑(甲)’들한테 ‘을(乙)’들이 당하는 ‘갑질’의 행태야말로 더는 참아내기 어려운 지경에 와있다고 본다. 문제는 천부당만부당한 일들이 점점 사라지기는커녕 교묘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왜 도도한 인류사의 수레바퀴는 짐짓 볼썽사나운 과거사를 소환이라도 하듯이 자꾸만 거꾸로 뒷걸음질 치는 걸까? 비근한 예로 필자 역시 몸으로 직접 겪었거나 가까운 데서 일어난 일들을 여럿 알고 있다.


첫째는 기고문 때문에 벌어진 한 인간의 민낯을 공개하련다. 이는 물론 교정이 필요한 부분에 관하여 언급하는 게 아니다. 지면에 부적합한 어휘나 내용은 마땅히 걸러져야겠지만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물론 국립국어원의 규정에 따른 각종 문장부호조차 모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권리 남용을 두고 되짚는 말이다. 반평생을 국어교육에 종사한 자로서 비록 학생의 글이라도 당사자의 고유한 문체(style)는 최대한 살려줘야 하거늘 어찌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를 내세워 함부로 문맥에도 맞지 않는 개악을 일삼는지 캐묻고 싶다(보시다시피 명사 배치를 고친 교정부호만도 두 군데임).


둘째는 층간소음에 얽힌 어처구니없는 체험담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흩날리는 층간소음의 잔해”라는 글을 통해 지상에 밝혔거니와 지금도 진행 중이어서 고난도의 인내심이 언제까지 버텨주려나 내심 임계치 반 기대치(?) 반인 상태다. 누군가의 말처럼 맘씨 좋은 위층을 만날 확률은 운명에 맡겨야 한다지만, 개인적 습관인 듯 거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건 다반사고 발뒤꿈치를 바닥에 콕 박은 채 골프연습을 하는가 하면, 매번 나 몰라라 오리발도 모자라 관리소장이 나서면 집에 없는 것처럼 철저히 위장하니, 철면피 앞에서의 기대치란 단지 상상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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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의 어리석은 대처법이다. 자영업자는 최대한 손님들의 소비심리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게 앞이 지저분하면 들어가고픈 마음이 반감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인건비에 자잿값이 올랐으니 음식값을 올리는 거야 얼마큼 양해할 일이로되, 덩달아 요리의 질까지 형편없이 떨어진다면 왜 주객전도의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밖에서라도 종사자의 흡연하는 모습이 보일라치면 냉큼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건강을 위해 끼니를 이어가는 법이므로 자신의 기호품으로 인한 피해자가 생긴다면 더이상 일개인의 권리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넷째는 공무원의 구태의연한 일 처리 방식이나 태만한 근무태도에 관한 일갈이다. 애초에 ‘공복(公僕)’이라는 낱말을 듣고 기분이 상하면 국가사회를 위해 기꺼이 심부름하겠다는 자세가 흐트러진 게 맞다. 철밥통에 걸맞은 신분과 연금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최근 조사에서 공채 경쟁률이 한풀 꺾인 건 왜일까? 사안을 공익차원에서 바라보는 시민으로서는 올 게 왔다는 입장이다. 임용제도의 틀이 대부분 점수에 의한 줄 세우기여서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심층 면접을 거쳐 사명감 있는 사람에게 공직을 맡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다섯째는 택시를 모는 기사분들에게 정중히 건네고픈 이야기가 있다. 제발 요금 올리는 데만 열을 올리지 말고 손님을 정성껏 대하시라. 친절히 짐을 실어주고 내려주면서 상냥하게 인사를 나누면 거스름돈 외에 웃돈이라도 얹어주고 싶지 않을까? 온종일 앉아만 있다가 생기는 질병도 틈날 때마다 부지런히 일어났다 앉기를 거듭하면 상당 부분 치유되거나 예방되지 않겠는가? 개인적 경험으로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베풀고픈 마음은 상대에게 달린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나아가 흡연으로 인한 담배 냄새가 차 안에 배어있다면 그 차는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 고장 시내버스 기사들의 난폭운전을 고발한다. 필자는 이따금 서울 갈 때 외에는 솔직히 단말기에 신용카드의 어디를 갖다 대는지도 서툰 경우에 속한다. 아내에게 물어 애써 숙지하고 가도 망설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마당에 신경질적으로 급출발에 급정거는 기본이고, 뭘 묻기라도 하면 귀찮다는 듯 불친절한 데다가 심지어는 내릴 때 뒤에다 대고 상소리를 해대는 건 심하다 못해 역겹다. 굳이 흔한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조금씩만 남을 배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갑질은 우리 주위에서 더는 변수가 아닌 느낌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5호)에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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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갑질이 상수인 사회'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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