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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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ㅎㄱㅇ대 문학박사과정에 당당히 합격한 뒤 등록까지 마쳤지만 재단 측의 비협조와 현실적 장애물로 인해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구성원의 달란트를 백안시한 자들의 근시안적 처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지역 언론에 학교명과 함께 글이 실리면 홍보에 곧잘 활용하면서도 어찌 그런 이중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 도무지 그 속내를 모르겠다.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조직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거니와 미래지향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토양을 일구어낼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주말강좌를 개설한 ㄱㅈ대 교육학 박사과정이었으나 큰 사고를 당한 정신적 여파에 실력마저 모자라 입학을 허락받지 못했다. 아쉽게도 십여 년 전에 마친 교육학석사의 완결판이 불발된 터다. 공들인 신학대학원 뒤로는 틈틈이 다듬은 글월을 모아 여남은 책자를 펴내는 일에 주력했다. 차분히 맞이한 정년과 함께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는 해묵은 숙제인 박사과정을 앞당긴 계기였다. 원래는 미처 밟지 못한 지구촌 맞은편의 여행지를 두루 다닌 다음 공부를 시작할 요량이었으니 말이다. 그곳은 ㅇㅅㅌㅁㅅㅌ대학원 기독교교육학이었다.


수업내용은 초장부터 만만치 않았다. 매주 쏟아지는 과제물에 치여 지레 겁을 집어먹고 하마터면 멈출 뻔했을 만큼 말이다. 설상가상 다원주의자들과 맞서 싸울 일까지 겹쳤다. 마귀는 한통속이라더니 교수와 원생이 한 팀이 되어 대적하는 양상은 실로 영적 전투였다. 일련의 과정은 고맙게도 연재물로 승화시켰다. 끝내 학점에서 불이익을 당한 기록은 씁쓸한 기억일 수밖에. 어찌 교육자라는 위치에서 양심을 헌신짝처럼 팔아먹을 수 있는지 경멸스럽다. 하긴 심중에 예수그리스도가 없는데 무슨 의로움을 기대하랴. 사람이란 본시 믿을 만한 대상이 아닌 이해하고 사랑받을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 입증된 경우다.


유사한 고민의 종양은 동종교배를 마다한 결정을 접고 목회학을 마친 ㅍㅌ대로 회귀한 뒤 불거졌다. 여기서도 다원주의자를 맞닥뜨린 참이다. 그 역시 공식처럼 원생과 연대해 수준 낮은 짓거리를 일삼더니만 학점에 불이익을 주었다. 복병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탈수증세였다. 매주 ‘평택섶길’을 강행군한 데다가 주중에 하루를 더 할애해 한남정맥을 정복하려는 대열에 합류한 게 화근이었다. 자칫 입이 비뚤어질 수도 있는 구안와사로 인해 양·한방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양의에게는 돈을 뜯겼으나 한방에서의 한 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후 우리 부부는 좋은 한약을 처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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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픽사베이>

 

그 덕분에 범위를 고지한 영어시험을 무난히 통과했고 내친김에 종합시험까지 이겨냈다. 이제 남은 장벽은 논제를 정하는 일이었다. 아마 4학기 들어 유능한 강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난감한 지경에서 헤맸을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성령님은 나에게 어렵잖게 프로포절을 구성해낼 은사를 허락하셨다. 이미 써놓은 몇 편의 글월이 결정적 역할을 감당해주었다. 곧이어 두 번의 심사절차가 필자를 벼르고 있었다. 논제를 여러 번 바꾸는 일이야 다반사여서 충분히 감내할 만한 절차였거니와 불투명한 가운데 투명한 빛을 잃지 않은 것이야말로 오롯이 주님의 은혜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진통 끝에 심사위원들이 정해지고 이윽고 중간심사에 들어갔다. 신랄하게 난타를 당한 끝에 급기야 원고는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깊은 시름은 무거운 몸살기로 나타났다. 이내 추스르고 논문을 재설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서로들 아귀가 맞지 않으니 마뜩잖은 기류는 오래 갔다. 이 난국을 돌파하는 데는 하늘로부터의 지혜가 절실했다. 늘 복병은 예기치 않은 데 숨어있는가 보다. 방어 한번 못한 지도교수가 훼방을 놓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예수님은 심사위원장을 든든한 원군으로 내정해놓으셨다. 끝판을 뒤흔들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던 그의 궤계는 수포로 돌아갔다.


드디어 나는 신학에 문학을 접목한 간학문적 시도를 인정받았다. 아직은 학문적으로 미숙할지언정 성삼위 하나님으로부터 기독교 철학박사로서의 인증을 마친 참이다. 물론 혼신을 다한 아내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그때마다 밀려든 고초를 의연히 견뎌내기는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그러니 학위의 절반은 사랑하는 여인의 몫이다. 여기서 나란 사람은 일대 반전이 될 만한 구상을 공표했다. 방송대에서 문화교양학을 수학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두고 필자는 박사후과정의 일환이라는 해설을 덧붙이며 각 학문을 섭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1호)에는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 소환한 과거의 관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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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박사는 장애물 경주’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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