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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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시기쇼아라’의 역사 지구로 가는 길에는 꿈꾸는 설화가 금세 튀어나올 거 같은 원시림이 있었다. 눈 쌓인 언덕바지에 죽죽 뻗은 메타세쿼이아를 닮은 낙엽수로되 그리 삭막한 느낌이 아닌 삼림 지대에 뒤이어 독일 가문비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면 무엇이랴. 필자의 눈동자를 가득 메운 값진 보배의 군락지는 밤이 되면 여우는 기본이고 늑대와 곰까지 출몰하는 지역이라니 대낮에도 각별히 조심하라고 이를 만하다. 문제는 늘 그놈의 돈줄. 최근 들어 부쩍 중국의 목재상들이 수시로 나타난다는 소식에 일개 나그네에 불과한 내가 왜 이토록 모골이 송연해지는지 모르겠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면 바로 여기가 유럽의 허파인 셈이다. 그러기에 더욱 목숨처럼 지켜내라는 건 무조건 손대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과학적 간벌에 따른 체계적 식목으로 얼마든지 기존의 생태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복병은 인간들의 조급증이요 조바심이다. 웬만큼 먹고살 만하면 지속 가능한 상생을 추구하는 쪽이 옳은 길이다. 이만큼 청정을 유지했기에 이곳에서 세계 3대(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광수 생각) 미인들이 태어나는 걸까?


현지 해설가는 미리 준비한 멘트를 시의적절하게 배열하는 데 능숙하다. 시기쇼아라 여행의 시작과 끝이 헤르만 오베르트 광장에서 펼쳐진다는 말과 함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격적으로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이곳 시청에서 고용한 깜짝 이벤트 맨이었다. 녹색 모자에 빨간 웃옷을 입고 세계 60개국의 인사말을 건넨다더니 과연 한글에도 제법 노출된 발음. 일행은 드라큘라 백작의 생가를 뒤로하고 등굣길에 설치한 계단식 통로를 따라 일명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성을 방문했다. 지금은 학교로 쓰이고 있는 건물의 내부를 살펴보니 스무 명 내외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 몇 칸과 행정실이 전부. 연륜이 묻어있는 담벼락을 아내와 둘러보며 산자락을 끼고 자리한 마을을 굽어보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아기자기한 가게를 훑어보며 다들 서둘러 내려온 건 이번 여정에서 가장 고급진 호텔방을 한 번 더 이용하려는 의도적 발걸음. 실은 이런 호사도 현지 기획을 담당한 장본인이 준 팁이다. 아침 열 시에 키를 반납한 다음 기분 좋게 방문을 나서니 이래서 여행은 숙소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상식을 확인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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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마니아의 인민궁전 앞에서

 

‘AZUGA’라는 알파벳 글자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길. 하지만 그 말이 살짝 재밌다기보다는 뭔가 아쉬운 건 왜일까? 그만치 루마니아의 여정이 끝나가는 길목에서 끝으로 만나볼 ‘부쿠레슈티’의 이모저모가 궁금해서였다. 어느새 여행자의 정서를 헤아린 듯 지금껏 보았던 어떤 무리보다 눈에 띄게 많은 양 떼가 시야에 들어왔다. 곧바로 나타난 마을 입구의 커다란 공원묘지. 열병합발전소의 겉모양이 첨성대를 빼박은(표준어는 ‘빼쏘다’) 것도 흥미롭다. 여봐란듯이 우리 팀원을 맞는 루마니아의 심장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광장에 서니 그 시절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보다는 차우체스쿠가 남긴 인민궁전이 두 눈을 사로잡는다. 엄청난 규모에 저만치 품격 있는 외관을 어느 건물인들 쉬이 따르랴. 하지만 프레스코화가 유난히 아름답다는 크레출레스쿠 정교회처럼 화려한 외형이 사람을 살리는 건 아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잡신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어설픈 무신론자들은 좀체 믿어지지 않을지라도 이는 엄연한 사실. 알량한 지식으로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그렇다면 루마니아 미래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은 최대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기에 산업을 일궈 먹거리를 찾고 일자리도 늘려야 하되 어차피 영생할 여지가 없다면 이제는 하늘과 맞닿은 세계를 소망해야 한다. 물론 “육체의 연단도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목숨이 붙어있을 때만 유효하므로 한시적임)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디모데전서 4:8)라는 말씀에 착념하길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정중히 생명의 길을 안내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외면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촐한 연재를 마치면서 바쁜 여정 내내 깨알 같은 메모를 멈추지 않았음에도 이번만큼은 가급적 필자의 뇌파에 고여있는 기억의 용량에 의존하려 했다면 가볍지 않은 결례일까? 출입국 도장만 열 개를 넘기는 동안 귀찮다기보다는 일말의 치유과정처럼 느껴지더라는 소회를 전하며 미흡하나마 이 글월을 맺는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88호)에는 “최인훈을 광장에서 만나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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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루마니아: 시기쇼아라 및 부쿠레슈티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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