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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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불가리아(Republic of Bulgaria, 인구: 약 690만, 면적: 한국보다 10%가량 큼)는 세르비아보다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으나 허접한 미개발 지구를 지나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얼마나 영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내심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연히 균형감이 부족해 보이는 산야와 농지의 비율. 숲을 보니 간벌을 아예 하지 않는지 나무들이 너무나 빽빽한 나머지 도무지 인공림인지 자연림인지 건강치 않아 보였다. 이처럼 한 뼘 국경을 사이에 두고 풍경이 일시에 뒤바뀌는 예는 흔치 않은 일이다. 노면이 거칠고 길섶이 다듬어지지 않은 거야 얼마큼 이해할 수도 있으나 나라 이름이 바뀌자마자 대번에 뭔지 모를 장벽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는 단지 군데군데 기분 나쁜 잔해들이 굴러다님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하다. 말하자면 아직도 공산당의 폐쇄적 기운을 떨쳐내지 못한 시차의 공백은 아닌지? 이런 걸 보면 어느 곳이든지 허술한 관리자에게 노출되어있는 한 인구밀도가 낮다는 것이 개개인에게 정서적 여유를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수도인 ‘소피아’는 투박스럽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중후한 멋을 풍기는 도시였다. 한복판 네델리아 광장이야 한 나라 행정의 중심지이니 그렇다 쳐도 고대 성채의 면모를 보여주는 세르디카 유적이나 오스만투르크 지배 당시 숨어들었던 페트카 지하교회의 자태는 의연함 그 자체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카파도키아 데린쿠유에 버금가는 역사적 현장인 양 은근히 내세우려 하나 그거야말로 잔뜩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 웬만하면 한 여인의 승천설을 퍼뜨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필자는 소피아성당에서 행해지는 정교회의 예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복장을 가다듬고 사진 촬영을 금지함은 물론 실내에는 의자조차 없앴을뿐더러 아카펠라에 의해 부르는 성가 또한 엄숙하게 들렸다. 성호를 세 손가락으로 그리는 건 삼위일체를 상징한다는데 정숙한 분위기를 중시하는 걸로 봐서는 천주교의 전례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핵심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본질이요 그 능력에 있다(디모데후서 3:5). 반어적인 건 종소리만큼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다는 점. 필자가 잘못 들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끌어들인 뒤 기를 죽이는 방식이라나 뭐라나? 누구라도 우스개처럼 풀어줄 만한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그는 일상적인 소재를 재밌게 풀어가는 솜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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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아의 벨리코 투르노보

 

개신교나 성당과는 색다른 십자가의 형태를 뒤로한 채 연이어 나타나는 우중충한 지붕들. 하지만 얼핏 허술해 뵈는 집이나 특이한 형태의 아파트만 해도 공산주의 시절에 아무렇게나 지어서라기보다는 인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니 배고픈 시절에 겪었을 만한 질보단 양을 중시한 결과란다. 그것이 꿈보다 해몽이든 아니든 도대체 전원이라는 낱말이 떠오를 법한 경치를 여태 조우하지 못한 것 못지않게 너나없이 기대치가 높았던 불가리아 요거트에 대한 실망감은 꽤나 컸다. 하지만 그건 전 세계를 강타한 물가고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만치 이곳 역시 돈이 되는 맛에 길들이다 보니 인심이 사나워진 탓이리라. 허탈감에 허기진 식탁을 메운 이는 역시나 로컬 가이드. 한참을 공들여 이제는 좋은 짝을 찾겠다며 좌중을 향해 읍소하듯 감쪽같이 연막을 치더니만 막판에 가서야 슬그머니 불가리아 처자와의 동거 사실을 털어놓는 단막극 주인공을 자처할 줄이야! 아, 이런 경우는 출연료를 줘야 하나, 거꾸로 받아야 하나?


‘벨리코 투르노보’는 불가리아의 옛 도읍지. 일행의 발길은 협곡을 굽이치며 흐르는 얀트라 강물을 따라 수직으로 솟은 자연성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신묘한 산악지형. 마치 탁월한 설계자에 의해 건설된 해자와 성곽처럼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천혜의 요새라는 형용으로는 태부족한 풍광이로다! 가까스로 불가리아의 숨은 보물을 찾아낸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관광지인데도 거리는 깨끗했고 곳곳에 만발한 야생 벚꽃마저 새색시처럼 고와 보였다. 일거에 이룬 이미지 변신의 현장. 흡사 폐차장에서도 꺼릴 만한 1981년식 고물차를 고치고 고쳐 여태껏 애지중지한 사연을 듣고 난 뒤의 기분과 엇비슷하다면 선뜻 이해가 갈는지 모르겠다. 아쉽게도 여기를 가리켜 우리나라 경주에 해당한다는 설명을 끝으로 현지 가이드와는 작별을 고해야 했다. 불과 6개월 후면 고국으로 회귀할 거라는 소식과 함께 불가리아가 살아갈 길은 보시다시피 지천인 해바라기, 유채, 옥수수를 재배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86호)에는 ‘루마니아: 펠레슈성 시나이아 수도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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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불가리아: 소피아와 벨리코 투르노보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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