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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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Ph.D.)

심술궂은 보라를 피해 지름길을 놔두고 해변을 끼고 돌아가는 길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을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에서 아까는 대형차들만 통제하더니 이제는 아예 소형차까지 통행을 틀어막았다. 빤히 보이지만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길목에 납작 엎드린 잡풀과 잡목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오랜 세월 빈틈없는 돌산에 뿌리를 내리고 세찬 풍우와 거친 풍파를 이겨낸 모습. 그 길섶을 수놓듯 줄지어 피어있는 스플리체 꽃은 우리네 개나리와 혼동할 만치 닮았거늘 척박한 석산 군데군데 고깔모자처럼 생긴 나무는 여태껏 이름조차 모르는 상태. 보아하니 잔가지 없이 통뼈도 드러내지 않은 채 꿋꿋이 견디는 침엽수(명칭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압)는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 뜰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늘씬하다. 저토록 관상수로 적격인 수종을 한국에서 만나볼 수 없는 건 필시 피치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 계속 눈엣가시처럼 걸리고 찌르는 건 도로를 넓히며 파헤친 토양의 찌꺼기들이다. 이곳 역시 깔끔한 뒤처리가 안 되는 모양새로다. 아, 인간은 정녕 대자연과의 공존을 포기한 걸까?


일행이 찾은 곳은 몬테네그로(Republic of Montenegro, 인구: 약 60만, 면적: 한국의 1/8가량)의 ‘페라스트 인공섬’. 견고한 콘크리트 위에다 두 채의 건물을 이어붙인 듯한 회당이 있었다. 가느다란 십자가를 받친 구형 밑에 푸른 종탑은 나름 고풍스럽다. 비록 배 한가운데 세운 돛이 없긴 하지만 그 옛날 범선 비슷한 선박에서 내리자마자 엿들은 해설은 믿거나 말거나, 200년 동안이나 어부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덕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잔돌을 던져 섬이 됐다는 전설인데, 뱃사람의 안녕을 기원하던 우리네 신당(서낭당의 일종)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였다. 내부에는 여러 투박한 장식물에다 정성껏 그린 벽화나 천장화까지 기존 성당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박물관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온갖 잡동사니를 긁어모아야 전시물이 되고, 뭔가 볼거리가 있어야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눈길이 멎은 곳은 그 곁에 자리한 자연섬. 몇 그루의 나무뿐만 아니라 혹여 바다에 흩어진 홍합 양식장의 주인장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기실 그 속내는 이 연안부두를 기반으로 생계를 꾸려온 어민들의 생활상이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놓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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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고성

 

‘코토르’는 이번 여행에서 필자가 뽑은 관광의 최고 명소. 대뜸 산 중턱을 떠받치고 있는 성곽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오늘은 마침 진입 금지의 날. 쉽사리 가파른 돌계단을 포기하고 나니 성채가 나타났고 해자를 자처한 물길이 걸음을 견인했다. 담소를 나누던 팀원과 떨어진 뒤 우리 부부는 성내를 골고루 밟아보기로 했다. 문제는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통행로들이 필요 이상 막혀 있다는 점. 길손의 동선을 최대한 편리하게 획정하기에는 타성에 젖은 관리들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리라. 그러니 제아무리 의기투합이 충천한들 지도를 들고 일일이 묻는 일도 금세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고 따로 현지 가이드를 부르기에는 출혈이 너무 심할뿐더러 최소한의 역사탐방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나마 인적이 뜸한 구역을 골라 쏘다니는 묘안을 짜내는 일이 급선무. 예의주시할 대목은 구시가지의 예스러운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오솔길을 찾아내는 일이렷다.


코토르 자연역사문화지구는 응당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겨울 만치 세르비아와 베네치아의 영향을 받아온 땅덩어리에 채 3만 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이어서 한눈에 아늑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의외의 복병은 실시간 콧속을 자극하는 자동차 매연의 맹공격이었다. 바로 앞 도로를 오가는 차량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바닷바람을 타고 고스란히 성내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평소 비염을 달고 사는 나로서는 예기치 않은 골칫덩이를 껴안은 형국. 크루즈가 하루 세 대씩이나 드나든다는데 말이 좋아 북유럽 피요르드에 버금가는 절경이라지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조만간 그 위상에 치명상을 입힐 거라는 걱정을 하며 성벽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를 구경하다가 한 노파가 파는 토마토와 오렌지에 눈길이 갔다. 못생긴 걸로 봐서 노지 재배한 게 명확하다. 냉큼 현지 화폐로 표시된 가격을 유로로 환산하니 두 무더기라야 5유로를 조금 넘는 수준. 선뜻 나눠 먹을 요량으로 한아름을 구입한 뒤 시계를 보니 정해진 약속 시각에 한 치 오차도 없었다(이게 이번 여행 중 우리 집의 유일한 구매 품목임).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82호)에는 ‘알바니아: 티라나에서 벙커를 만나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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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몬테네그로: 페라스트와 코토르 성내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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