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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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문인, 철학박사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한 영혼 구원의 원리는 자명합니다. 연약한 인간에게도 때로는 완벽을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저의 관심은 단지 진리를 찾아보자는 데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불편을 끼치면 안 된다는 의식에서 출발해 보렵니다. 하지만 내가 나쁘다고 말하는 행동이 오히려 나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분별력이 있으므로 정정당당하게 처신하는 것이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길이니까요. 물론 개인과 계층과 국가가 서로 공정한 잣대를 행사해야 합니다. 고로 늘 경계할 지점은 이기심입니다. 인간의 행위들 너머에는 아주 명백히 우리를 압박하는 실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주는 삼위의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니까요. 공간과 시간, 열과 추위, 색깔과 맛,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무한한 지혜로 이루어진 산물입니다. 무신론을 두고 단지 상상력으로 치부해버리는 까닭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의 논리적 비약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지만 그 어느 종교보다도 상생하는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살아 움직이는 우주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째는 유물론적 관점입니다. 이는 물질과 공간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시각으로 심지어는 생명체까지도 어느 날 화학물질과 적절한 온도가 마련되고 결합함으로써 점점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관점으로 광대무변한 우주의 배후에는 정신세계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곧 우주는 분명히 초월자에 의해 정해진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실험이 거의 불가능해도 필자로서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영적, 물리적 상식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주에 관한 비밀이 밝혀진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그 정답이 우연이라는 것으로 귀결될까요? 누구에게나 양심이 해답일 수 있습니다. 성급히 신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섣불리 지난 한 세기 동안에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두고 출몰했던 감언이설들을 끌어오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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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락산 일대에서 만난 풍경화

 

우리의 불안은 그래서 발생합니다. 지금쯤 왠지 심기가 불편해지는 분들도 나탈 수 있습니다. 종교 선전에 불과한 내용을 철학처럼 교묘히 포장하지 말라고 항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문제 제기가 시대에 뒤떨어진 공상일까요? 분명한 건 우리는 퇴행적이어서는 고란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그분이 만든 우주이고, 우리 영혼에 깃들어 있는 도덕적 황금률입니다. 모두가 가치로 여기는 공정한 처신, 이타심, 용기, 신뢰, 정직, 신용으로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니 우리의 잘못에 대해 용서하신다는 말을 건네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는 말에도 아직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노라면 절대 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잘 설명이 안 되니까요. 내일 당장 사정이 좋아지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곤경이고 공포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세상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이런 낭패감을 딛고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입니다, 현실적 절망을 장래 소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과 경쟁하는 개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거늬 매일 불거지는 주제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가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여러분이 만약 무신론자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은 거대한 착각에 불과해야 합니다. 원저자도 한때는 지독한 무신론자였으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도리어 이전보다 개방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일은 다른 종교는 죄다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비교적 정답에 가까운 답지도 있지 않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이 있는 종교에는 유사 정답이 없습니다. 애써 과거사까지 소환하여 종교적 다수파와 소수파를 거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차원은 아니니까요. 범심론은 가장 위험한 것 중에 으뜸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제 몸을 움직이듯이 우주를 움직이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우주 자체를 하나님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69호)에는 ‘기독교를 위한 변증 - 무신론의 허구를 반박함’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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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기독교를 위한 변증 ‘영혼구원의 법칙을 논함’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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