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장군 순국 및 문화벨트 조성방안 주제로 100여 분간 열띤 토론 가져
지난 8월 12일(금) 평택시 도일동 원균 장군 사당에서 ‘원균 장군 순국 425주기 제향’ 및 ‘연구발표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원균장군묘역문화벨트조성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와 원주원씨대종회 주최로 열렸으며, 시민연대 회원들과 오영귀 송탄출장소장, 김영주 평택시의원, 평택문화원 관계자, 원주원씨 일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연구발표회에서는 ▶고려 정승, 중찬 원부 공의 재발견 ▶원릉군 원균 장군의 순국 ▶문화벨트 조성방안 등의 주제로 100여 분간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발제자인 백승종 역사학자는 “고려 정승(국무총리급), 원부 공은 고려후기의 이름난 권문세가였던 원주원씨 출신으로 고려후기의 역사적 전환기의 인물로 그에 관한 연구조사를 통해 조선왕조 출범에 이르는 사회적 흐름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원균 장군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칠천량해전에서 중과부적으로 순국했다. 그럼에도 패장이라고 이중적인 잣대로 원균 장군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장군에 대하 비하이고 모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백승종 교수는 “원균 장군의 비극은 당파싸움과 깊은 관계가 있다”며 “동시대인인 선비 오희문은 <쇄미록>에서 원균 장군은 한산대첩의 주역이고, 의병장 정경운은 <고대일록>에서 임진왜란을 무사히 넘긴 것은 원균과 이순신의 공로이고, 선조임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원균 장군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고, 천재 문인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원(균)과 이(순신) 두 명의 장수는 나라를 구원한 공이 있어 마을이 더욱 융성하였다”는 사료들을 제시했다.
박성복 평택문화원 부설 평택학연구소장은 지정토론에서 “원균 장군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극적인 기술들이 여기저기 많이 거론되고 있고, 현재까지도 겁장, 패장으로 인식되고 있어 이를 개선해 올바르게 평가 받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며 “원균장군묘역 문화벨트조성과 함께 장군의 공과에 대한 학술적 조명과 다양한 홍보를 통해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계은 평택섶길해설사는 “무리한 출전을 강요한 자들과 도망하여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장군의 명예를 더럽혔다”면서 “이순신 장군은 분명 존경받을 지장이었고, 원균 장군 또한 항상 두려움 없이 앞서나가 싸우는 용장이었다. 두 분 모두 바다를 지키다 나라를 위해 죽었다는 지극히 명백한 사실이 조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전체댓글 25
[원균 장군 기사모음] 영화 ‘한산’ 그 이후, 원균 장군을 다시 이야기하다
-원균 장군 관련 댓글들과 의견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에 논란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최근 관련 기사들을 몇 가지만 추려 올립니다.
-원균 장군에 대한 논란은 지난 400여년간 오래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 될 것입니다. 사안은 복잡하고 진실을 찾는 것이 어렵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원균 장군의 공과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안 되어 있고, 억울해 마지않는 후손들이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토론과 공론장들이 활발해져 다수가 공감하는 방향으로 논란이 정리되기를 기대합니다.
원균 장군 후손, 유명 유튜버 A 모 씨 고소 2022/10/18
http://www.ptsisa.com/news/articleView.html?idxno=37510
원균 묘역 문화벨트?...재평가 논란 지속 2022/10/18
https://m.youtube.com/watch?v=kP8ZhmQCnq8
특집 평택협치공론장: ‘한산’ 그 이후! 원균 장군을 다시 이야기하다 22/09/28
-백승종, “전기적 자료는 사태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서술해 인물 왜곡”
-김인호,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했다는 당시 자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원균 폄하, 시대적 필요에 따라 ‘유능한 이순신’과 ‘무능한 원균’으로 소환
http://www.ptsisa.com/news/articleView.html?idxno=37313
‘한산’ 그 이후! 원균 장군을 다시 이야기하다 22/09/28
http://www.pt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376
[황ㅇㅇ] 더이상 원균으로 왈가왈부하지 못 하도록 찍은 영상 22/09/23
https://www.youtube.com/watch?v=RjwzIEIHkQY
[백승종칼럼] 원균 장군의 역사적 진실 22/09/21
http://www.pt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314
오희문은 원균이 있는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떠도는 소문을 적은 것이지 직접 본걸 적은게 아님(원균의 언론 플레이), 그리고 집접 본 내용에는 술처먹고 휘청거리는걸 봤다는 문장이 나옴. 원균의 패전으로 왜군이 함양까지 처 들어왔다는 구절이 있음. 이순신 한테 열등감 지리는 선조가 원균편만 들은거 모르는 인간도 있나? 그런 구절 안나옴. // 헛소리 작작들해라 쓰레기들아. 원균은 배때지처불러서 말도 못탔다는 기록이 있는데 용장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들 땜에 평택이 욕처먹는다 씨부레들아.
원균의 공적 상황표(원균 그리고 이순신 180페이지)
1592년5월7일 옥포해전에서 원균 .이순신 이억기가 조선함 91척으로 일본함50척과 전투 적선을 26척 격파 함
1592년5월7일 합포 해전에서 원균 이억기가 조선함 91척으로 일본함 약5척과전투 적선 5척을 격파 하였다.
1592년5월8일 적진포 해전에서 원균 이억기가 조선함 91척으로 일본함 약13척과 전투 11척을 격파 하였다.
1592년5월29일 사천 해전 에서 이순신이억기 원균이 조선함26척으로 일본함13척과 전투 적선13척 격파 하였다.
1592년6월2일 당포 해전에서 이순신 이억기 원균이 조선함 26척으로 일본함21척과 전투 적선21척 격파 하였다.
1592년6월5~6일 당항포1차 해전에서 이순신 이억기 원균이 조선함51척으로 일본함26척과 전투 적선26척 격파 했다.
1592년6월7일 율포해전에서 원균 이억기가 조선함51척으로 일본함7척과 전투 적선 7척 격파 하였다.
1592년 7월 8일 한산도 해전 이순신 이억기 원균 조선함72척으로 일본함73척과 전투 적선 47척 분파, 12척 나포
1592년 7월 10일 안골포 해전에서 원균 이억기 조선함72척으로 일본함 40여척과 전투 적선 20척 분파
1592년 9월 1일 부산포 해전에서이순신 이억기 원균 조선함166척으로 일본함 470척과 적선 1백여 척 격파
1593년 2월 1일~3월 8일 웅천 해전에서 원균 이억기가 5차례 적선 공격 #이쯤이 이순신이 통제사간 된것으로 보인다.
1594년 3월 4일 당항포 2차 해전 원균 이억기가 조선함 약60척으로 일본함 약 40척과 전투 적선 30척 격파
원균이 육장으로 전임됨 이순신이 혼자 통제사를 함 약 4~5년간 아무런 전쟁이 없었다. 그후 가등 청장을 잡으라는 조정의 성화에 부산 앞바다로 진출해 보려다가 물살에 통제사 이순신의 배가 걸려서 침몰하고 간신이 살아남 부하의 실수로 배에 불이 나사 큰 손실을 입고 조정에 소환되어 옥에 갇힌다. 대신 원균이 통제사가 됨
동인은 눈에 가시인 연전 연승의 원균을 이순신이 실패한 부산 앞바다로 내몰아서 조선함 약 78척 격파 당함.
1597년 7월 4일 에서 6일 칠천량 해전 지휘장수들 통제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사 최호는 전사 경상우수사 배설은 전라도 쪽으로 배를 빼서 살았다. 그리고 큰 전투는 일본에는 사실 자료가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는 명량 해전에 공은 배설과 김억추의 공이라고 한다. 노량해전에서는 손문언의 공이라고 한다. 권율이 이순신의 공이 있다고 장계를 올려도 선조왕은 거짓말이라고 상을 주지 않는다. (실제로 약간의 전리품들은 중국 해군제독 진린에게 받쳤다) 그래서 이순신은 나중에도 중국에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옛 일본 임진왜란 문언에서는 이순신이 나오지 않는다. 통제사가 되고 한번도 해전을 안했으니 그들이 알겠는가. 원균의 이름은 나온다고 한다.
이순신은 당대에 모두들 간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 선조를 속이고 원균을 모합하고 원균의 공을 가로 채고 이원익의 공을 가로채려고 했고 왕을 대신한 세자를 만나지 않은 한없이 방자 한죄를 지은 사람이다.
명량해전에도 실은 별로 큰공이 없으며 노량 해전에도 큰공이 없다. 순전히 원균장군이 목아지 끌어다가 공을 세우게 만들어준 것이다. 원균 공적표는 이미 내가 올린바 있다. 참고 하기 바란다. 그것은 이순신의 덕수 이씨 퇴계학 연구회 연구원이신 분이 쓰신 것이고 원균정론은 전주이씨 성령군파 종회장이 시 이제범님이 쓰신 것이다. 한지의 거짓말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