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조선 후기 큰길가에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 ‘비전’이라 부르면서 유래

 

평택시사.JPG

▲ 동삭동 아파트 밀집지역(2021.10.01.)

 

◆ 비전동(碑前洞)


비전1동·동삭동·죽백동·청룡동·월곡동·동삭동 일부 지역과 비전2동 소사동·용이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며, 비전1·2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다. 조선시대 진위현 병파면 지역이었고, 1914년 병남면으로 통합됐다. 


조선후기 큰길가에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 또는 ‘비전(碑前)’이라고 부르면서 유래됐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때 어인남리·산직촌·양성군 구룡동면 창리·서재곡의 일부를 병합해 병남면 비전리라 했다. 1986년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동이 됐고, 도시 발전에 따라 비전1·2동으로 분할됐다.


1. 어인남리: 비전2동 관할의 자연마을. 덕동산 동쪽에 위치했으며 조선후기에는 ‘남리(南里)’라고 불렀고 지금은 ‘어인남리’ 또는 ‘어린내미’라고 부른다. 양성 이씨와 순흥 안씨가 많이 거주하며 일제강점기 계인조합이 조직돼 ‘계인’이라고도 부른다.

 

2. 자란(紫蘭): 비전1동 관할의 자연마을. 본래 원곡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어서 ‘재랭이’, ‘당재’라고 부르다가 2000년 경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자란’으로 고쳤다. 무속인들이 많이 거주해 ‘당골’이라고도 한다.

 

3. 은성(銀城): 자란마을 고갯마루의 이름. 평택천주교회 평택성당 뒤에 1,3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정’ 또는 ‘은성’이라고 했다.

 

4. 산직촌(山直村): 소사벌택지지구 안에 있었던 자연마을. 주변지역에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인 과수농장을 중심으로 배 과수농업이 발달해 ‘이곡(梨谷)’ 또는 ‘배나무골’이라고도 불렀다. 2008년 전후 소사벌택지지구 조성으로 폐동됐다.

 

5. 문화촌(文化村): 한국 전쟁 뒤 피난민들이 정착해 피난민촌이라고 부르다가 문화촌으로 바꿔 불렀다. 문화촌 남동쪽 지역은 1960년대 전후 전라도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전라도촌’이라고 구분해 불렀다.

 

6. 상신작로(上新作路): 평택여중사거리에서 한전 평택지사 사이 도로변에 형성된 마을. 옛국도 38호선 변 신작로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7. 하신작로: 옛 국도 38호선 평택여중 사거리에서 성동초등학교 사이의 신작로에 형성된 마을.

 

8. 낙촌: 삼각산 뒤쪽에 형성된 마을. ‘낭떠러지기’라고도 부른다. 본래 천주교인들이 운영하는 옹기점이 있었고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가 1990년 택지개발에 따라 단독주택단지가 조성됐다.

 

9. 삼각산: 자란마을 뒷산. ‘자란산’ 또는 ‘재랭이산’으로도 부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자란마을의 제당이 있었다.

 

10. 덕동산: 1978년 4월 충혼탑이 건립돼 ‘충혼산’ 또는 ‘탑산’이라고 부르다가 1986년 평택시 승격을 기념해 산 정상에 덕동루를 세우면서 ‘덕동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1. 매봉: 신한중고등학교 뒷산. ‘응봉산’이라고도 한다. 일제가 작성한 조선고적조사 자료에는 ‘용봉산’ 또는 ‘매봉산’이라고도 기록됐다. 기우단이 있어 신성하게 여겼다.

 

12. 배다리저수지: 소사벌택지지구 안에 있는 저수지.

 

13. 부처지골: 덕동산 동북쪽 골짜기. 전통사찰 명법사가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39호)에서는 ‘평택시 합정동(蛤井洞)’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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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비전동’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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