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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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창조주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은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혜(智惠)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태초에 삼위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슬기롭게 지으셨다. 지혜는 지식(知識)과는 다르다. 지식의 범주가 이론에 있다면 지혜는 실천의 영역이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은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를 말하고,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적 능력을 가리킨다. 지식이 다소 현학적(衒學的)이라면 지혜는 다분히 호학적(好學的)이다. 지식이 자신의 박학다식(博學多識)을 늘어놓는 데 비해 지혜는 다방면의 해박한 정보가 없어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렇다고 지혜가 어떤 처세술 따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혜는 실용적 중용(中庸)보다는 철학적 원리원칙을 중시한다. 지혜자의 언행이 일치하는 바는 당위(當爲)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세계관을 갖기 마련이다. 성삼위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지혜자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축복을 시시때때로 누리며 살아간다. 창조주께서 주신 말씀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이 슬기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른다.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 적용함으로써 경건한 삶을 살아낸다. 성경 말씀 안에는 온갖 지혜와 보화가 들어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혜 있는 자는 말과 행동을 삼갈 줄 안다. 지혜자는 매사 절제되고 품격있는 언행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의 세계를 알고 즐긴다. 어떤 경우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일수록 유한한 슬기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기술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 지혜자는 무의식적인 상태에서도 결코 그릇된 길을 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사람을 좋아하신다. 창조주를 사모하는 자들이 받는 지혜를 축복이라고 부르는 근거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생령(生靈)을 지으신 원천이 바로 지혜다. 그 영역을 벗어나 슬기롭게 살아갈 존재는 세상에 없다. 영적 존재인 사탄마저 끝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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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의 갈림길은 결국 축복과 저주로 드러난다. 말씀을 믿고 붙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선을 주시니 감읍한 일이고, 말씀을 거부한 채 곁길로 빠지는 자에게는 기도가 절실한 참이다. 그 종착역에 영생의 비밀이 숨어 있다. 지혜의 목적이 정반대로 나타난 결과는 오롯이 사람들의 몫이다. 천사도 부러워할 만한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주신 결단은 실로 은혜다. 심지어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각자의 자유의지로써 믿도록 설계하셨다. 엄연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되는 자유까지 허락하신 것이다. 다만 그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돌아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신 까닭이다. 미처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거부하는 영혼들까지 참고 기다려주신다는 결정적 증거다. 하지만 기회는 목숨이 붙어있을 때가 유효기간이다. 모든 사람이 천국 백성이 되기를 애타게 바라시되 그마저 결정권은 각자에게 위임하신 터다. 문제의 근원은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언 1:6)라는 말씀을 수용하지 못한 연고에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뒤 인간을 지혜롭게 만드셨다. 이른바 모세 오경을 통해 친히 모든 지혜를 일러주셨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 지혜의 총합이다. 십계명을 목숨처럼 지키는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힘써 지키지 않는 자는 어리석었다. 요셉과 다니엘이 받은 축복 가운데 으뜸이 바로 지혜였다. 모세와 다윗 또한 지혜로운 자의 전형이었다. 그들은 탐욕으로 빚어진 분쟁을 잠재우고 갈팡질팡하는 무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다만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지혜롭지 않은 행실을 죄다 물리치지는 못했다. 그들마저 자유의지를 선용하지 못한 결과였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일수록 자유의지를 선용했다. 자유로이 즐기는 권리는 그에 상응한 의무를 수반한다. 창조주께서 부여하신 엄청난 권한이기에 책임이 따른다. 기실 그 권세를 엉뚱한 데 쓴 최초의 인간은 아담과 하와였다. 그 부부가 저지른 우매함으로 인해 죽음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죄의 속성이 자자손손 유전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나님께서 정녕 그와 같이 예고하셨기 때문이다.


지혜롭지 못한 인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창조주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다. 그런 뜻에서 교만의 반대는 겸손이 아니라 불신이다. 불신앙이 인간들을 하나님과 철저히 분리해버렸다. 구세주 예수님께 전심으로 구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지혜인 줄 모른다.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영혼을 지으신 까닭이다. 그러나 세계관을 바꾸는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애타게 찾는 자들에게 양문을 여시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데 기인한다. 자신 안에 감춰져 있는 지혜를 모르는 건 당연하다. 지혜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태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다. 우리 안에 지혜가 이미 주어졌음에도 저마다 꺼내서 사용하기를 주저한다. 아예 지혜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각자에게 허락하신 슬기를 찾아내라고 주신 성경 말씀이 바로 지혜문학인 것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23호)에는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 잠언은 일용할 양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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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슬기로운 자의 행보’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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