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7(화)
 

신리, 1914년 수원군 언북면 중대와 고두면 신리 통합

안화리, 조선후기 진위현... 1914년 주교동 일부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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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궁방전이었던 신리(2007)

 

◆ 오성면(梧城面) 신리(新里)


고려 때 오타장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수원부 오타면과 진위군 고두면 지역이었다. 1914년 수원군 언북면의 중대와 고두면 신리(새터)를 통합해 신리(新里)라 했다.


1. 삼궁원(三宮院): 신1리의 자연지명. 조선후기 궁방전이 있었다. 배다리가 있어 주교포라고도 한다.

2. 신대(新垈): 신2리의 자연지명. ‘새터’의 한자지명이다.

3. 삼동촌: 신3리의 자연지명. 궁리의 다라고비진과 연결된 뱃터가 있었다.

4. 중대(中垈): 신4리의 자연마을. ‘중새터’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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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다내라는 지명이 예스러운 안화1리(2008)

 

◆ 오성면 안화리(安化里)


조선후기 진위현 오정면. 1914년 주교동의 일부·안화·송대를 합해 오성면 안화리라 했다. 안화라는 지명은 최초 입향 세력인 순흥 안씨들이 마을이 번창하라는 뜻에서 지었다 한다.


1. 원안화(元安化): 안화1리의 자연지명. 본래는 진위천 옆에 마을이 형성돼 홍수가 잦았기 때문에 ‘우다내’라고 했던 것을 순흥 안씨가 거주한다고 해서 안화라고 했다.

2. 송대(松垈): 안화2리의 자연마을. 본래 마을 공동우물 옆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어 ‘솔터’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송대’라고 했다.

3. 소금배·바다내·태편: 안화1리의 자연지명. 바닷물이 드나들던 시기에 소금배가 닿았다고 해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3호)에서는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梁橋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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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신리·안화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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