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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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퉁불퉁한 오르막. 사륜 구동의 지프가 출렁거려 손잡이를 꽉 잡고서도 몹시 불편했다. 요동치는 지프는 지독한 요철 탓이로되 문제는 길손의 안전을 전혀 담보할 수 없는 지형지세. 만의 하나 가녀린 소형차들이 들러 엎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소중한 생명을 부지하기 버거운 상황이어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주위 계곡이며 민둥산들은 희뿌연 화산재를 잔뜩 뒤집어썼다. 그 험준한 산악지대에 노출된 나그네들이 흔들거리는 지프에 매달린 형국. 두꺼운 마스크를 쓴 채 흩날리는 흙먼지를 감수하며 가까스로 힘겹게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험난한 커브 길을 가득 메운 건 득시글대는 덤프트럭 행렬. 어쨌든 천연 거름이라는 화산재를 앞 다퉈 퍼 나르는 광경은 분명 장관이었다. 중간에 들른 <지진박물관>. 화산 폭발의 흔적을 보존한 박물관은 어젯밤 본 연극만큼이나 허접했다. 화산재에 그을리고 녹아버린 일상용품의 몰골들. 대충 주워 담았음직한 물건들을 대충 나열하듯 전시했지만 생생한 참상을 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의 조언이나 코디네이터의 자문일랑 아예 없는 초보 아마추어 수준. 기실 이것저것 챙길 여유야 없었겠지만 새까맣게 불타버린 물품들마저 태부족이어서 관람객에게 선보이기에는 낯간지러웠다. 하긴 그 와중에 누구라서 불탄 식물이나 오그라든 생필품을 온전히 보존하랴. 오랜 세월 해묵은 지층처럼 굳어진 잔재를 가만히 살펴보니 세계인의 눈길을 끌만한 소재들이 사그리 사라져버린 듯 보여 못내 아쉬웠다. 한눈에 푸석한 산자락. 대폭발로 인해 2010년의 머라피 화산은 둘로 쩍 갈라졌고 또다시 언제 갈라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게 가이드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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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사고는 뜻하지 않은 데서 터지고 말았다. 일행이 내린 곳은 머라피 화산을 앞에 둔 이른바 포토지점. 멀리 용솟음치는 연기를 숨 가쁘게 내뿜는 앞자락에서 차례로 사진을 찍은 다음 나는 멋진 포즈를 취하라는 가이드의 거듭된 권유에 못 이겨 좁다란 범퍼를 딛고 지프에 올라섰다. 그렇게 마지못해 범퍼에 올라서서 엉덩이를 보닛에 대는 순간 미처 손쓸 겨를도 없이 흡사 파리가 낙상하듯이 그대로 땅바닥으로 미끄러져버렸던 것. 아니 미끄러진 게 아니라 숫제 내동댕이쳐졌다는 게 내 모습에 다가선 표현일 터다. 넘어지자마자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일어는 났으나 곧바로 왼손에 통증이 전해왔고 핏발이 서린 손바닥을 펴니 패인 생채기에 검은 화산재가 알알이 박혀있었다. 왼쪽 종아리에 입은 찰과상은 그나마 약과였다. 좀체 내키지 않는 일을 냉큼 마다치 못한 게 화근이었다. 어찌나 후회막급이었는지 며칠을 두고 속이 상하고 아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매 아내 말마따나 더러운 사탄이 노린 짓거리임에 틀림없었다. 호텔을 나설 때 기도하며 의식은 했으되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마귀의 궤계에 속수무책 당했다는 자책감이 좀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의 방심을 할퀴고 떠난 마수를 여봐란 듯이 물리치지 못한 실수에 바짝 약이 올랐다. 고맙게도 일행 중 현역 수간호사가 있어 왼손과 왼다리에 입은 상처를 잽싸게 싸맬 수 있었다. 좋으신 예수님의 예비하심이었다. 만약 치료가 미흡했거나 더뎠다면 예기치 않은 염증으로 번질 수도 있는 국면. 새삼 지면(紙面)을 빌려 치유의 손길을 펼쳐준 이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가파른 내리막길. 애최 정상까지 향하리라는 기대치는 무리였고 잠시 들른 지하대피소마저 무용지물이어서 끝내 2명의 목숨을 더 앗아갔다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엄연히 그 산중턱에 화산 관측소를 세웠건만 관측소는 그저 관측소였을 뿐 경각심은커녕 아무런 기능이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얼마간 예측하고서도 허름한 지하실 창고에도 미치지 못한 채. 조심스레 내려오는 길. 아까와는 방향이 다르긴 해도 가옥들이 멀끔하다. 하나같이 싱그러운 바나나 이파리, 손끝에 닿을 듯 잘 자란 망고 열매들. 이처럼 먹거리가 흔한 거야 축복이로되 그래서 이들의 게으름을 부추긴 측면은 어쩌랴. 지척에 임자 없는 과실이 지천이니 말이다. 길가에 키 작은 나무는 코코넛 묘목. 분양을 목적으로 조성한 농장이었다. 열악한 도로 사정. 그러나 논길을 가로지르는 차량의 운행은 그리 위태해 뵈지는 않았다. 점심을 든 데는 번듯한 가든형 식당. 뷔페로 차린 현지식으로 몇 가지 야채를 갖췄지만 생선튀김은 뻣뻣하고 맛이 없었다. 식은 밥에 불어터진 라면사리가 주 메뉴여서 만일 일행 중 내어놓은 고추장이 없었다면 허기조차 달래지 못할 뻔했다. 그나마 매운 풋고추가 있어 한결 친근했지만 도리어 당도가 떨어지는 과일이 먹을 만했고 달지 않은 쌀과자가 입에 맞았다. 제일 맛있는 건 노랗고 작다란 바나나였다.
 
※ 다음호(349호)에는 인도네시아 기행 다섯 번째 이야기 ‘족자카르타 : 사원들’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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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네시아 기행 ‘족자카르타 : 활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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