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황수근 학예연구사의 평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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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움에서 서로 끝가지 해보자고 벼를 때 쓰이는 평택이 무너지나 아산이 깨지나라는 관용어가 있다. 이 관용어의 유래는 청일전쟁 때 양국이 평택과 아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 중에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으로 고통과 피해를 당해야했던 백성들의 아픔에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평택은 청일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지역으로 평택문화원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le petit journal(1894813) 외 청일전쟁과 관련 사료 3점을 소장하고 있다.
 
 le petit journal(1894813)은 프랑스의 일간지로 8페이지 분량이다. 이 신문에는 앞과 뒤 전면을 할애해 한국의 상황(les evenements de coree)라는 제목으로 삽화를 실었다. 앞면에는 서울의 동요(agitation a seoul)라는 부제를 달아 서울에서의 각국의 사람들 웅성거림을 표현하고 있으며, 뒷면에는 일본인에 대한 중국선박 침몰(un vaisseau chinois coule par les japonais)이라는 부제를 달아 침몰한 청나라군인을 구조하는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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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에도 평택문화원에서는 청일전쟁을 그린 판화인 조선전보기, 청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이 만주에서 보낸 군사우편, 성환 전투 등 청일전쟁과 일본의 내부적인 상황을 그린 화보 근대백년사 제6(1888~1897)을 보관하고 있다.
 
 이처럼 평택에서 청일전쟁이 벌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평택은 조선시대 주요 육로인 삼남대로와 충청수영로가 지나고 아산만과 안성천·진위천을 통한 수로가 발달하여 청일전쟁의 주요한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육로와 수로가 만나는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임진왜란 육전 3대첩 중 하나인 소사벌대첩의 현장이 평택이라는 점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며 이는 현재에도 평택에 주요군사시설과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황수근 학예연구사는 수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평택교육지원청 우리고장 평택시 교재 감수위원을 지냈으며, 지난 2011년부터 평택문화원 평택향토사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현재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 민간기록조사위원,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평택시사> 집필에 참여한 황 연구사는 본보에 30회에 걸쳐 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를 시민, 독자여러분에게 알기 쉽게 연재할 예정입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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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이야기] le petit journal 외 청일전쟁 관련 사료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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