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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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중간하게 남은 건강 야채 주스를 남김없이 마시는 바람에 갑자기 배가 돌았다. 공항 가는 길 내내 진땀이 날 만큼. 무난한 이착륙에 비해 천진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초장부터 삐걱거렸다. 소형버스 기사가 공안에게 딱지를 떼는 등 적잖이 불안한 출발. 고맙게도 어설픈 첫인상에 비해 이후 인솔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중국 4대 직할시에 속하는 <천진(天津), 톈진>. 상주인구는 서울과 비슷한 1,100만 남짓으로 중경의 3,700, 상해의 2,400, 북경의 1,800만에 이어 네 번째(천 만 이상일 때 지정)였다. 가이드는 실크로드상의 요지로 알려진 난주(蘭州)가 새로이 직할시 승격을 눈앞에 뒀다는 말과 함께 23개 성()2개 특별구(홍콩과 마카오)를 더해 총 29개 행정구역으로 편성돼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특이점은 1개국 2체제를 허용한 통치방식. 물론 홍콩의 경우 임명제 행정장관에 대해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새삼 거대한 대륙이 굴러가는 걸 보는 필자의 느낌은 남다르다. 실제 중국 내에서 두 곳을 오갈 때는 국제선으로 취급해 신분증과 인장을 지녀야 한다는 것. 양자강을 중심으로 남방과 북방으로 나누고, 황하를 경계로 하남(河南)과 하북(河北)을 가른다는 상식도 유용하다. 2008년 북경올림픽을 전후로 뛰어오른 집값을 다잡지 못해 물가 또한 고공행진이어서 걱정이 태산이라는데, 우리네처럼 갈수록 노령화로 치닫는 인구 비율로 인해 앞으로가 더 골칫거리. 올해부터 55개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한 자녀 정책을 포기한다고 공표는 했으되 별반 효험은 없을 거라는 게 젊은 가이드의 예단이었다. 투박한 이북식 말투. 중국에서 나고 자란 조선족 3세였는데 그의 조부는 생각 밖에도 고향이 충남 예산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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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의 식생활은 간소하다. 아침과 점심은 집에서 대충 때우고 저녁은 거의 외식을 하는 편인데 식재료를 튀기는 게 문제.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겪은 배탈의 원인이었다. 중국인의 상술과 축재는 널리 알려져 있다. 평생을 모으다가 관속까지 가져가는 게 이제껏 관습이었다면 요즘 들어서는 인식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으니 그 기점은 사천대지진.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죽어라고 쌓아만 놓다가 졸지에 사지로 떠나는 이웃을 목도하며 느끼는 게 퍽 많을 수밖에. 웃기는 건 명품도 커야 팔린다는 얘기. 즉 현찰을 많이 넣을 수 있어야 인기라는 거였다. 아무튼 이제 실컷 보고 양껏 먹고 신나게 쓰고나 죽자는 게 이들의 공감대란다. 아직은 좀 더 두고 지켜볼 사안이로되 뭔가 의식구조에 변화의 조짐이 일렁이는 흐름만은 확연하다. 택시비는 도시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어 북경의 기본요금은 2,500, 천진은 2,000, 이보다 작은 도시는 1,500원 정도. 우리와 닮은 점도 흔하다. 접촉사고가 나면 무턱대고 도로를 막고 큰소리를 치며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서로를 빼닮았는지 신기할 지경. 냉철하게 현장을 보존한 다음 차분히 보험사 직원이 오기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광경은 애최 기대할 수 없는 영역일까? 후진국일수록 불필요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건 불가피한 사회적 비용이 될 수밖에는 없나보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운전대를 잡으려면 대학을 3군데나 나와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까. 무조건 먼저 들이대, 빵빵대, 돌아대야 한단다.
 
  어느새 천진시내 한복판. 덩달아 덩치 큰 건물이다 싶더니 군부대였다. 이어 은행가가 나오고 질서정연한 입간판을 지나치는 가운데 學大敎育에 눈길이 갔다. 아마 학원이거나 그와 관련한 사무실인 듯. ‘박애도라고 읽히는 간체자 간판을 지나 번듯한 가로를 가로지르니 민생로(民生路)’. 그 명칭을 보면 하나같이 의미심장하거니와 그 발음 또한 부드럽다. 이를테면 건국도의 독음인 [지안구오다오]처럼. 고마운 건 절반은 번체자여서 해석에도 별반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 ‘민족로의 발음은 재밌게도 [민주루]. 도로명에도 인민을 위한 마음이 깃든 것 같아 내심 흐뭇했다. 일련의 연구소 단지를 끼고 접대중심이라는 입간판을 거쳐 당도한 <이태리거리(이스펑칭지에, 意式风情街)>. 100여 년 전 형성된 청대 시가지를 특화한 처소로써 이태리 품격을 한껏 느끼게 하는 건축물 단지였다. 아시아에서는 단 하나뿐이라는데 그리 넓거나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꽤나 북적거렸다. 아기자기한 골목길 곳곳을 돌아보니 나름 이탈리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려고 애썼다. 아니 이태리 현지에 대한 추억이 별로 좋지 않은 필자로서는 오히려 이곳의 정교하고 치밀한 조경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싶었다. 비록 완성도가 아직 일본에는 못 미칠지언정 분명히 우리네 마무리 수준보다는 한 수 위. 하긴 중화민국의 건축술이며 토목기술은 예로부터 앞서있었다. 보도를 차지한 유럽 취향의 노천식당들. 문제는 술이었고 취객의 노상방뇨였다. 여기저기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아내가 자못 안쓰러울 만치. 당연지사 패스트푸드점이 기승을 부렸고, 눈앞에 KFC 가게가 나타났다. 재밌게도 현지음을 肯德基(긍덕기)로 정한 점은 긍정적인 덕을 쌓아 유익한 터전을 닦겠다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가이드의 부탁은 연신 잡상인을 조심하라는 것. 유독 보복심이 강한 중국인의 기질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는데 물건 가격을 흥정할 때와 돌아설 때가 전연 다르다는 충고이자 경고였다.
 
다음호(342)에서는 중국 방문기두 번째 이야기 대륙풍경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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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중국방문기 ‘천진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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