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조하식.jpg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첫차를 타고 안착한 인천공항. 3주 전보다는 눈에 띄게 헐렁했지만 해외나들이 열기는 여전했다. 코앞에서 목도하는 양극화의 그늘. 가벼운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아들이 포함된 단체비자를 받아들고 제주 상공을 날아 단체 입국수속을 마치고 중경직할시의 공항청사를 나서니 뜨거운 대기가 한꺼번에 온몸을 엄습했다. 고온다습은 틀림없으되 한국 특유의 찜통더위보다는 한결 덜한 날씨. 이채로운 건 중경공항의 경우 국제선보다 국내선이 훨씬 붐빈다는 점이다. 골칫거리는 어딜 가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중국인의 소란스러움. 아까 승무원이 건넨 귀마개로 간신히 버텼으나 그 여진은 오래 갔다. 거대도시 중경(重慶 / 重庆, 충칭 / Chongqing)은 아직 대한민국영사관이 없는 곳. 순간 방정맞은 생각이 뇌파를 스쳤다. 그도 그럴 것이 혹여 가이드에게 맡긴 여권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하릴없이 국제 미아 신세로 전락할 판인데다 귀국일자가 개학날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중경은 첫눈에 세련미 넘치는 도시였다. 중국의 직할시(북경, 상해, 중경, 천진) 가운데 가장 크다는 것도 의외였다. 가이드에 따르면 놀랍게도 북경과 상해를 합쳐도 3,400만 명(사실은 3,300만을 넘지 못함)의 중경을 따라잡지 못한다는데, 하지만 필자의 상식으로는 북경이 이미 2,000만을 넘어섰고 상해가 족히 2,500만을 헤아리니 꽤 과장인 듯하다. 땅덩어리는 제주도를 뺀 남한과 엇비슷한 크기. 사방을 둘러보니 반도처럼 삐죽 튀어나온 바위산을 깎아 세운 도시로써 야심차게 한 나라를 세운들 부족하랴. 그래서 천하의 칭기즈칸도 미처 정복자의 말발굽을 내딛지 못한 터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 남송이 몽골에게 멸망당한 걸 보면 전략적으로 중경보다 더 중요한 지역을 공격하느라 미뤄두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세상사는 이야기.JPG
     

이렇게 번듯한 도시를 만든 이가 내외신에 연일 오르내리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 서기. 그는 부인이 저지른 살인교사와 자신의 부정부패 혐의로 인해 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명백한 건 그간 보시라이가 애써 가꾼 도시의 면면들. 가는 곳마다 현대적 면모에 건물의 규모가 엄청나다. 차창 밖 보도블록은 정교했고 가로세로의 구획은 반듯했다. 가히 일본에 버금가는 치밀함. 무엇보다 생활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인 보시라이의 공적만은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가이드의 주장이었다. 따라서 주민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단다. 활발한 구명운동이 다각도로 전개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버스가 지금 지나는 길은 보석로(宝石路). 과연 정성껏 다듬은 보석처럼 노면이 매끄러웠다. 중경직할시의 위치는 동중국해로부터 2,250정도 내륙으로 들어온 양쯔강(揚子江)과 자링강(嘉陵江)의 합류지점.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민당정부의 수도이기도 했다. 연평균 온도는 섭씨 22도가량. 하지만 날아갈수록 대기오염이 악화일로를 치달아 걱정이랬다. 예로부터 충칭이 속한 쓰촨 성(四川省)은 사방으로 4시간을 내달아야 도시를 겨우 벗어나는 데여서 네 길목만 굳게 지키면 절대 뚫리지 않는 천혜의 요새였던 곳이다. 그나저나 오늘처럼 비행기 이착륙이 순조로운 날도 드물다는데, 사철 운무가 잦아 시계 확보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말. 하지만 천계의 모든 것은 창조주의 섭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 기체 안에 숨어 무시로 기도하는 자가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이들은 복 있는 자와 함께 덩달아 축복의 대열에 끼어든 셈이다.

 

고층빌딩 숲에 파묻힌 중경은 양자강을 끼고 문화가 발달했다. 이 큰 도시에 한국교민이 고작 100여 명에 불과한 건 퍽 의외. 당연히 한류열풍은커녕 한국문화조차 전무할 수밖에. 늘어선 가로수는 싱싱하고 노변 조경은 훌륭하다. 게다가 지저분한 전깃줄이 안 보였다. 도심에 한해 매설작업을 시행한 터였다. 조금 외곽으로 나가니 그제야 한두 가닥 전선줄이 눈앞에 나타났다. 부러운 대목은 도처에 산재한 관광자원. 시차를 두고 연차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쫓겨 가며 챙겼던 무수한 유물들을 해마다 바꿔가며 전시하는 것처럼. 연간 해맑은 날은 겨우 한 달뿐이고 희뿌연 안개로 뒤덮인 나날이 무려 200일에 달하다보니 사철 호흡기 질환이 끊이질 않는 곳. 여북하면 촉견폐일(蜀犬吠日)’이란 말까지 생겨났을까? 사천성 개마저 해를 보면 반가워 짖어댄다는 속담이란다. 그때 가이드가 갸우뚱한 논리를 폈다. 이처럼 미세먼지에 자외선이 가리는 바람에 미인이 많단다. 중경 출신 탤런트가 유난히 많은 이유도 흰 피부 때문이라는데 필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차창에 양자강이 들어왔다. 그 지류인 가릉강이었다. 안순(安順)으로 향하는 길. 대충 스무 개의 굴을 통과한단다. 산이 많으니 터널이 널린 도로구조. 참고로 최근 개통한 상해에서 귀주를 잇는 터널의 길이는 자그마치 66km(그러나 조사한 결과 잘못된 정보였음, 실제로는 2007년 완공한 중난산터널로 18km, 현재 가장 긴 터널은 노르웨이의 이레르랄터널로 24.5km, 일부 구간을 개통한 스위스 남부의 고트하르트 베이스터널은 58.85km, 해저철로터널로는 일본의 세이칸53.9km에 달함)라고 했다. 아예 사고에 대비해 제한속도를 시속 40km로 한정했고 중간에 유턴하는 시스템까지 갖춘 건 평가할 만하나 징검다리처럼 이어진 터널의 길이를 모두 합친 수치였다. 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고맙게도 도요타. 국산차였으면 더 좋았겠으나 이곳 기사의 보편적 운전습관을 고려한다면 안전 강도를 한층 높이는 게 훨씬 긴요한 참이다.

다음호(326)에서는 '중국 탐방기' 2- 귀양의 갑수루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6270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중국 탐방기, 중경시의 위용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