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붕타우의 아침은 상쾌했다. 오늘의 주제는 <구찌터널>. 호치민에서 북쪽으로 40km가량 올라가야 했다. 입장하자마자 비디오를 보여줬다. 북한인의 더빙이어서 꽤 어색할 거라더니 말투가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걸어서 돌아보는 밀림지대.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초토화를 겪은데다 낙엽송이 대부분인지라 숲속에 푹 파묻힌 촉감은 아니었다. 맨 먼저 눈에 띈 건 밀림의 생태를 모르는 미군들에게 치명상을 입힌 무기들. 조잡한 재래식이지만 애국심과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을 감히 대적할 자는 없었다. 쇠꼬챙이에 파상풍이 걸리면 상처가 금세 전신으로 번져 좀처럼 낫지를 않았단다. 숨구멍으로 기능한 굴뚝은 개미집 옆 환기구를 교묘히 이용했다니 동양인이 서양인의 지혜를 능가한 터. 더구나 모두가 곤히 잠든 꼭두새벽에만 밥을 짓는 통에 좀처럼 눈치를 채기 어려웠다는데, 이런 데를 귀신같이 찾아낸 이들이 한국군이었으니 전언인즉 개미집에 불을 지르고 개머리판으로 땅바닥을 두들기노라면 전해오는 음향이 뭔가 달랐다는 게다. 오솔길을 걸어 참호를 지나니 무기전시장 곁에 잭 푸르트 열매들이 무르익었다. 구찌터널은 원래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뚫었으나 훗날 막강한 미군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 더 유효하게 쓰였다. 야금야금 파낸 250km의 땅굴. 실제 비좁은 통로를 간신히 기어 내려가 바짝 웅크린 채 쪼그리고 앉아 걸어보니 고작 50m에 불과했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하긴 낮에는 호미를 들고 밤에는 총대를 메고 전투를 벌이는 자들을 누군들 당하랴. 마치 서슬 퍼렇던 유신시대 한 손엔 망치 들고 한 손엔 총칼을 들었던 우리네처럼. 가느다란 땅굴에 식당을 만들고 섬세한 수술실을 갖추는 등 터키 카파도키아의 데린구유와 같은 지하마을을 구축해 놓았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일부를 흙덩이(마사토 또는 화강토)를 슬금슬금 황톳물에 흘려보낸 슬기도 그렇거니와 1948년에 뚫기 시작한 땅굴을 1966년에서야 발견한 걸 보더라도 은밀하고 치밀한 작업의 노하우가 놀랍다.

  그런 와중에 한국군의 파병에 매단 조건에도 일리는 있다. 모든 급여를 송금해 조국의 경제개발 자금으로 조달한 것은 물론 미국에서 따로 경제지원금을 받아내고 이미 지급된 무기를 반납하지 않은 채 반출을 허락받은 외교술도 남다르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의 진출을 도와 도로와 주택을 건설하며 기술력을 축적한 지혜도 돋보인다. 연간 5만 명이 주둔하며 연인원 32만 명이 거쳐 갔다면 양질의 특수다. 비록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10만여 명의 고엽제 환자를 양산했으되 오늘날 이만치 살게 된 데는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던 터. 참전에 대한 공식 사과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 당시 광화문에서는 현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을 대표해 시위대를 이끌었다. 마냥 격세지감을 느끼는 행보랄까. 덧붙여 항간에서는 1973년 키신저와 레둑토가 공동수상했던 노벨평화상을 한갓 웃음거리로 치부하지만 인간사에 무슨 절대선이 있다던가? 그 나름의 의미는 있다는 말이다. 그때 김일성은 월맹을 위해 조종사 120명과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끈끈한 사회주의국가의 형제애. 모름지기 악의 축이란 연합에 죽고 사는 법이니까. 언뜻 봐서는 알아채기 힘들도록 나무뿌리를 활용한 출입구. 평균 155cm에 지나지 않은 체구를 최대한 이용한 셈이다. 낚시 원리를 원용한 부비트랩의 위력도 반드시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오랜 세월 다져온 내공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디딜방아가 있는 초막에 이르니 가이드가 돌발 퀴즈를 냈다. 어처구니없는 맷돌 앞에 서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무릇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먹음직한 용과(龍果) 사이에 끼어들어 홀로 자라나는 난초가 있었다. 막강한 힘으로 끈질긴 기질에 당한 경우의 실례였다.

  110만 명 보트피플의 시발점이었던 붕타우.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20만 이상이 바다에서 익사했다는 기사는 모두를 서글프게 한다. 위로받은 바는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인 몇 나라의 포용적 인류애.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그 축에 끼지 못했다. 그나저나 매설된 포탄을 제거하는 데만 향후 200년이나 걸린다니 자고이래 안보를 담보하는 일이란 녹록찮다. 그보다 화급한 사안은 지뢰밭 제거. 그래서일까? 김우중의 아지트가 베트남에 건재하다는 소식은 반갑지만은 않다.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도 막상 회수한 혈세가 턱없이 부족하다면 법망이 한없이 허술한 참이다. 얼마 전까지 호치민에서 붕타우를 오가는 쾌속선이 성업 중이었으나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선박을 이용한 교통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단다. 시설이 훌륭한 몽탄(Mongthanh) 호텔에 여장을 풀고 유유자적 Arirang TV를 시청하는 망중한(忙中閑). 베트남 남부지방을 두루 섭렵하는 우리 부부의 여정은 더없이 안온하고 은혜로웠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3호)에는 베트남 기행 일곱번째 이야기, '사이공강 크루즈'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4431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베트남 기행 - 구찌터널의 상흔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