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가이드는 김구와 호치민의 공통점을 유격전에서 찾았다. 그만큼 게릴라전의 유용성을 높인 대목일 텐데 호치민이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인 수완이나 불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점은 자못 존경스러우나 가까운 미래조차 내다보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택한 안목에는 냉큼 이의를 달고 싶다. 둘 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었거니와 베트남과는 달리 한민족은 여태껏 분단을 껴안고 살아가니 안타깝다. 고무적인 건 청렴결백한 호치민이 다산의 ‘목민심서’를 접했다는 일화. 더욱이 베트남주의자를 자처하며 절대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대목에서는 새삼 숙연한 감마저 든다. 따라서 그가 추구한 노선은 성공했고 그토록 염원하던 통일을 이룩했던 것이다. 반면 그가 고집한 연좌제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미군에 부역하거나 사상적 전과를 안고서는 결코 진정한 공산주의자나 판검사는 못 된다는 판단이었다. 끝내 아쉬운 건 그의 유언대로 유해를 대지에 뿌렸으면 좋았으련만 후임자들에 의해 우상화한 현실이다. 연간 시신을 보존하는 비용만 8~9억이 든다니 말이다. 종교 탄압은 없다고 공언하면서도 선교의 자유를 박탈한 점도 뼈아픈 대목. 아예 종교법인을 불허하는 법률을 만들어 전도할 길을 철저히 막아버렸다. 또 하나 본받을 점은 전시에서도 1,000여 명의 인재를 발굴해 키우고, 전장에서도 스스로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그이기에 과거의 지주계층을 빼놓고는 국민 대다수가 응당 숭배할 수밖에. 

 가이드에게 베트남의 역사를 듣는 동안 차는 붕타우로 들어섰다. 프랑스의 영향으로 천주교의 교세가 남쪽을 중심으로 퍼져갔던 땅. 한쪽 대지는 몸살을 앓는 반면 다른 한쪽의 자연은 생생히 살아있다. 무엇보다 노면이 매끄러웠다. 특히 중앙분리대를 장식한 조경은 수준급. 멀끔한 도로를 내고 카지노를 열면서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늘어났다니 모순형용은 수사법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렸으되 이들을 토막 낸 건 16도선이었다. 그러나 길디긴 나라는 하나로 합쳐졌고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는 시방도 70년째 서로 으르렁거린다. 건물과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분리해 분기별 납세를 시행하고 자국민의 명의로만 이전을 가능케 한 법적 장치도 외국 자본을 묶는 구조적 한계다. 집은 50년, 땅은 70년을 시한으로 임대하는 방식이라니 숨이 막힌다. 50만여 명이 사는 붕타우는 널리 알려진 휴양도시. 거기서 우리는 양팔을 벌려 천하를 껴안은 <예수상>을 찾았다. 사방 툭 트인 해변을 끼고 중턱도 아닌 노산(Nho Mountain) 꼭대기에 32m 예수님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극히 이례적인 건 로만가톨릭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데서 마리아 아닌 예수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70%가 신봉하는 불교 등 토속 종교와 연합해 극구 개신교 정착에 반대한 저간의 속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벌린 팔의 길이가 자그마치 18m. 거대한 형상을 지탱하는 건조물의 삼면에 열두 제자와 세상을 섬겼던 그림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133개의 돌계단에 올라 마주친 풍광은 후줄근하지만 검소한 대통령의 소박한 별장 정도는 지을 만했다.

 사시사철 온갖 꽃이 피고 지는 <화이트 팔레스>는 본시 1889년에 축조한 프랑스 총독의 별장이었다. 한눈에 티우 전 대통령의 휴양지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수수한 곳. 몇 점의 유물과 골동품을 제외한다면 전혀 화려하지 않은 침대에 허름한 소파가 딸리고 수더분한 가구를 갖춘 걸 보니 불현듯 청남대가 떠올랐다. 자고로 독재자일수록 겉치레가 심한 편이 아닌가. 해변투어 중 들른 데는 커다란 천주교회. 정갈한 정원을 지나 성당에 드니 여전히 예수님은 아기였다. 그대로 크리스마스트리인 이등변삼각형의 나무가 눈동자에 들어와 이름을 물으니 ‘늑매성당’이란다. 늑매의 뜻은 성모 마리아. 하지만 명백하거니와 양모(養母)는 있으되 성모(聖母)는 있을 수 없다.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성육신하신 주님께 쓰임 받은 도구일 뿐 성부(聖父) 하나님의 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잉태된 걸 모르는 건지 알고도 우기는지……. 솔잎이 무성한 뒤뜰에는 석고상이 많았다. 가이드의 배려로 거닐어본 해안공원은 한마디로 야심작. 적어도 여기를 다녀간 사람이라면 베트남의 조경 기술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샛길은 세련되고 심은 열대수목은 싱그럽다. 여기저기 배치한 조각품 또한 만만찮은 수작들. 딱딱한 해변의 모래알만 사각댔다면 결코 남부럽잖은 자산이라고 자랑한들 거리낄 게 없겠다. 저녁은 어제 점심을 먹은 비원식당. 주꾸미에 멸치조림이 나오고 된장과 고추장을 곁들인 상추에 배추 이파리가 입맛을 한층 돋웠다. 동석한 남양주 새마을지도자들은 일종의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서로 경비를 맞춰보니 거기서 거기. 하긴 여행사를 운영하는 마당에 터무니없이 싸거나 비싼 가격을 물렸을 리 없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12호)에는 베트남 기행 여섯번째 이야기, '구찌터널의 상흔'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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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트남 기행 - 붕타우는 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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