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형수술(整形手術)과 성형수술(成形手術)을 혼동하는 듯싶다. 사전적으로는 전자는 의학적으로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몸의 기형 또는 병이나 외상(外傷)으로 인한 운동 기능의 장애를 정상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외과 수술을 뜻하고, 후자는 외과적 수단으로 형체를 고치거나 만드는 수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성형은 거의 미용 수단으로 이해한 나머지 수술을 통해 타고난 얼굴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맹신하여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그러나 얼굴을 비롯한 신체 일부에 변형 수술을 가한다고 해서 뿌리 깊은 열등의식을 근본적으로 없애기는 어려울 뿐더러 그에 따른 부작용이 이미 금도를 넘고 있어 이를 사안별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항간에 성형미인이란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연 미인이 존재할 뿐이다. 미안하지만 얼굴에 칼 댄 그녀는 단연코 미인이라고 볼 수 없다. 무려 100조 개에 달하는 미세한 세포의 배열에 균형이 깨져 얼굴이 울기에 그러하다. 마치 매끄러운 원단에 실밥이 빠진 듯 좌우 대칭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아직 수술 자국이 선명한 그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라. 아니 본인의 민낯을 찬찬히 뜯어보시라. 하도 치밀하고 정교하기에 함부로 손댔다가는 조직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성형을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중독에 빠져들게 된다. 이른바 누구처럼 만들어달라고 외치다가 너나없이 엇비슷한 꼴이 되고 만다. 한두 번이 열 번을 넘겨 급기야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섬뜩한 선풍기 아줌마처럼. 어디 비단 성형뿐이랴. 요즘 부쩍 잘못 돌아가는 우리네 세태를 바라보노라면 정처 없는 방황이요 자족 없는 탐욕일 따름이다.

  누구라서 본인의 얼굴에 스스로 만족할까? 추정컨대 극히 드물지 싶다. 하지만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거울을 볼 때 자신에게서 다른 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발견할 것이다. 그 자체가 자기 정체성이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자산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형 열풍이 불더니 어느새 온 나라가 성형 광풍에 휩싸인 형국이다. 그 끝은 무섭고 괴로운 부작용의 연속선이다. “모든 수술은 몸에 해롭다.” 어느 양심적인 의사가 대중매체에 나와 실토한 말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멀쩡한 신체에 너도나도 칼을 대는 풍조야말로 망조(亡兆)나 다름없다. 실패하거나 망할 조짐을 보고서도 시대적 흐름이 그렇다고 무작정 따라가다가는 함께 망가지는 게 이치다. 어리석은 대다수는 거지반 대세에 놀아나다 일을 그르치고 만다. 매사 의연한 자가 훌륭한 까닭이다. 이름난 디자이너일수록 심플하고 캐주얼한 복장을 선호하고 일류 요리사일수록 아내가 끓이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법이다.

  우선 눈부터 살펴보자. 거개가 가벼이 여기는 쌍꺼풀로는 성에 차지 않아 과감히 앞트임을 하더니 이제는 뒤트임을 감행하기 일쑤다. 정말 큰일 날 일이다. 겁 없이 양 옆을 찢었다가는 미간에 맞춰 태어난 가장 균형 잡힌 형상이 볼썽사납게 뒤틀리고 만다. 동자는 늘 눈의 한가운데를 지향하므로 늘어난 길이만큼 구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게 된다. 눈을 튼 자에게 일종의 사시 증세가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세상에 풀린 동공을 보고 예쁘다고 추어대는 바보가 있을까? 불가피한 마취의 후유증 또한 큰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국소마취에서마저 미처 깨어나지 못하는 사례는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하물며 전신을 마취시키는 대수술임에랴. 어떤 수술이든지 선천적 기형을 바로잡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옳은 이유다.

  뿐만 아니라 눈을 트면 눈곱이 안쪽에 모이지 않고 흐트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원래의 아이라인에 손을 댈 경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저분한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욱 곤욕스러운 건 눈물이 한쪽에 고이지 못하고 주르르 흘러내린다는 점이다. 곧 눈물이 일정량이 되어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자태를 잃어버리는데다 찬바람만 불라치면 살점을 떼어낸 부위가 시려 눈을 감고 뜨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증세가 생기는가하면 칼 댄 부분이 갈수록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증세가 나타나는 참이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우는 얼굴로 변형이 되다보니 점점 우울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금전적 낭비는 물론 평생을 진짜 내가 아닌 가짜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한 대가려니와 창조주의 작품을 스스로 훼손함으로써 자존감에 치명상을 입은 참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중한 몸을 섣불리 실험대상으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 몸 가운데 쓸모없는 지체는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이번호부터 '성형의 착시현상'이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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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성형의 착시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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