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3(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공항을 드나들 때면 매번 리무진을 이용한 탓인지 새벽 운전이 퍽 부담스러웠다. 예배를 드린 뒤 눈을 부비며 집을 나선 시각이 이른 3시 50분. 인터넷을 뒤져 안내도를 아내에게 건넸음에도 모호한 이정표로 인해 그만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순간 마치 왕초보처럼 운전대가 몹시 떨렸다. 꼭 신갈JC로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헷갈리는 팻말에 이끌려 수원IC로 샜다가 가까스로 인천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그때 아내가 되뇐 말은 아무튼 당신의 해외 견문을 위한 열정은 알아줘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후에도 시야를 흐리는 엷은 안개 때문에 몇 차례 위기를 겪고서야 간신히 공항청사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예약한 주차대행 회사원에 자동차를 맡긴 뒤 탑승한 세부 퍼시픽항공. 어렵사리 장도에 올랐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이 절로 새나왔다. 그야말로 초저가항공. 그렇더라도 기내식은 물론 물 한 모금조차 사마시라니 야박한 느낌이 든다. 필리핀까지는 약 4시간의 비행. 07:30분 정시에 이륙한 기체는 이내 한반도를 벗어나 드넓은 태평양을 훨훨 날아갔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펼친 연암의 ‘열하일기’. 그러나 도무지 눈 안에 들어오질 않는다. 출출한 김에 싸온 누룽지로 아침을 대신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훌쩍 세 시간이 흘러버렸다. 한 시간의 시차를 맞추고 기창 밖으로 눈길을 돌리니 까마득히 거센 물살을 헤치며 가는 배 한 척이 보였다. 검은빛 산자락에는 불난 듯 한줄기 연기가 피어오르고 메마른 강줄기에는 작다란 호수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서서히 엷어지는 두꺼운 구름층. 이어 납작한 섬들이 지나가고 헐벗은 경작지가 나타나더니 어느새 필리핀 상공이다. 한껏 고도를 낮춘 동체는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온 마닐라 일대를 둥글게 선회했다. 온통 녹슨 양철지붕으로 뒤덮인 마을. 말로만 듣던 그 빈민가였다. 하루 1~2불로 연명하는 이들이 인구의 70%를 차지한다니 알 만하다. 울긋불긋 원색으로 치장한 부촌과는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대다수의 하류층과 극소수의 상류층이 뒤섞여 사는 곳. 역설적으로 우리 부부는 거기서 지상 최고의 영상을 접했다. 가히 환상적이라는 수식이 결코 과장이 아닌 풍광. 자잘하게 점선을 그어 나눈 무논이 덕지덕지 이어지다가 실선으로 점철된 농경지가 눈동자에 가득 찼다. 동서와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로에 둘러싸인 니노이아키노국제공항. 민주화의 화신인 아키노 전 상원의원은 여전히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건기를 맞은 필리핀의 대지. 상하(常夏)의 계절답게 후텁지근했다. 하긴 한겨울 속에 있다가 한여름을 만나니 약간은 야릇하다. 무사히 짐을 찾아(마닐라 공항은 분실물이 잦아 일일이 수하물표를 확인함) 출구에서 만난 가이드는 젊고 유식(36세, 국제관계학 전공)했다. 이용할 차량은 15인승 미니버스. 첫눈에 비친 거리는 지저분했다. 노면은 울퉁불퉁하고 구석구석 쓰레기더미가 쌓여있다. 매연이 심해 대기가 혼탁할뿐더러 곳곳이 매우 혼잡하다. 대중교통수단은 지프와 포니를 결합한 ‘지프니’. 설명을 들으니 언제든 꽉 차야 출발하고 정류장마저 따로 없단다. 월남전 때 미군이 버린 중고차를 개조해 여태껏 쓰고 있었다. 눈앞에 뵈는 것마다 너무 무질서해 남국의 정취는커녕 알려진 국제도시의 면모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호 ‘대장금’에서 든 한정식. 갖가지 밑반찬에 김치전골이 푸짐하다. 질이나 양적으로 되레 한국보다 나은 수준. 바로 앞에 커다란 호텔이 있었다. 영문자는 생소한 SOFITEL. 한때 이멜다 여사의 소유였다는데, 그토록 독재에 시달리고도 연거푸 상원의원을 시키며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다니 언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긴 400년이나 이어진 노예근성을 어찌 하루아침에 싹 지울 수 있으랴.

  지금 차가 지나는 곳은 <마닐라 배이>. 가로가 번듯하다 했더니 간척지란다. 공식명칭으로는 C.C.P. Complex. 문제는 해마다 속수무책 당하는 태풍이었다. 한번 불어 닥쳤다 하면 일대를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버리기 일쑤라고 목청을 높인다. 곁들이기를 발생지점을 근거로 태풍을 여기서는 ‘타이푼’,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호주에서는 ‘사이클론’이라고 지칭한단다. 지금 소형버스가 달리는 길은 ‘로하드 볼리바이’. 그 중심로를 따라 팜트리가 늘어선 해안선에는 꾀죄죄한 노점상이랑 후줄근한 노숙자가 즐비하다. 대졸 초봉이라야 한화 40~60만 원선에 잡부들의 경우 20만 원에 지나지 않으니 미래를 설계하기란 그림의 떡이겠다. 1차와 3차 산업이 대부분이고 2차 산업은 전무한 실정. 어느 나라건 일자리가 많은 제조업을 살리지 않고서는 만성 실업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가이드에 따르면 비율빈(比律賓, Philippines의 가차문자)의 상주인구가 이미 1억 명을 넘어섰단다. 한눈에 우리네 1970년대 생활수준을 밑돈다고 보면 된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96호)에는 '필리핀 기행: 마닐라시내'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3966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세상사는 이야기] 필리핀 기행 '마닐라배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