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6(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빵으로 대충 때운 점심. 선교일정상 끼니에 연연하지는 않았거니와 쇼핑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구멍가게 같은 환전소를 거쳐 들른 국영백화점.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큰 데였는데 들어서기가 무섭게 전기가 나갔다. 멈춘 에스컬레이터는 자연스레 계단이 되었고 서로들 오르락내리락 엇갈리는 와중에 두루 돌아보았다. 눈여겨 본 데는 6층의 기념품 코너. 하지만 구입할 생각일랑 아예 없었고 대신 사방에 비친 울란바타르의 전경을 맘껏 구경했다. 층을 바꾸니 전자제품을 진열한 곳. 특제품 대우를 받고 있는 삼성과 엘지를 제외하곤 눈에 들어오는 물품은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건 서적이었는데 꼼꼼히 살피니 사전류 한두 권밖에는 한글을 찾기 어려웠다. 미처 한류열풍이 불어오기는 어려운 여건일 테니까. 안타까운 건 게르를 만든 손길. 재료를 실제와 맞출 순 없더라도 최소한 색상만이라도 닮을 순 없었을까? 아직도 반시간이나 남은 약속시간. 밖은 쌀쌀했다. 세찬바람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도심(都心). 우리 부자의 목표는 저만치 체육관처럼 뵈는 데였다. 가로지르며 오가는 캐시미어 길에 인조나무가 보였다. 어정쩡한 화단을 꾸미고 간간이 꽃나무를 심었으나 자라는 건 온통 잡초뿐이다. 방치된 분수를 지나 바로 옆 건물로 들어서니 태반이 빈 상가. 거기 빈 의자에 앉아 아들과 밀린 담소를 나눴다. 

  이제 남은 건 세 명의 릴레이 특강. 아니나 다를까 이처럼 긴요한 선교 일정 가운데 마귀가 공세를 멈출 리 만무했다. 목회자의 탈을 쓴 자의 기이한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그때. 뜬금없이 대형교회를 비호하며 큰 산에 비유하더니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을 향해 진로를 결정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전도에 힘쓰고 성경을 읽으라고 종용했다. 이른바 신비주의에 물든 해괴한 주장을 펴는 등 궤변을 늘어놓는 바람에 필자가 막고 나섰다. 정리하면 막판에 귀신의 영을 벗겨내고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았던 데 대해 감사하고 안도할 따름이다. 다음 나의 강론은 음주를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한 것. 재앙과 근심과 분쟁과 원망과 상처와 붉은 눈의 진원지를 술(혼합주)에 두고, 그것을 쳐다보지도 말 일은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고 독사 같이 쏘며 눈에 괴이한 게 보이고 구부러진 말을 하게 하면서, 끝내는 스스로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아서 사람이 때려도 아프지 않고 상하게 한들 내게는 감각이 없다하며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노라 하리라고 일갈한 잠언(23:29~35)을 풀어주었다. 마지막 정전도사의 미디어 특강은 압권이었다. 골수에 박힌 말은 기획사에서 요즘 가수를 뽑을 때는 노래 실력보다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자를 고른다는 대목이었다. 그래야 상품성이 있다는 설명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부디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가요를 들음으로써 영적 사고의 지평과 자산을 늘려가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강의였다.

  신기한 일은 한국과 몽골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엉덩이에 90% 이상 몽골반점이 있다는 점이다.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도합 7번씩이나 침공을 받은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예들이 있다. 매(보라매, 송골매, 수지니, 날지니, 해동청)를 비롯해 음식(설렁탕, 소주)과 복식(철릭, 족두리) 등 무려 200여 단어가 몽골어에서 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현재 몽골에 체류하는 한국인이 약 4,000명에 이르고 한국에 머무는 몽골인이 3만 명(몽골리언 가운데 여태껏 한국에 다녀간 사람을 누적하면 전체 인구의 9%에 달함)이라니 놀랍다. 그들의 송금액이 몽골 전체의 GDP에서 16%를 점유한다는 통계수치까지 대하노라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판국이다. 다만 몽골 가정을 방문할 때는 금기사항이 있었다. 검지로 무언가 가리키기(죽이겠다는 의사표시), 출입문 한가운데 서기, 기둥에 기대고 서거나 앉기, 두 기둥 사이로 지나다니기, 연장자 면전으로 지나가기, 화로에 쓰레기 버리기, 불을 향해 발 뻗고 앉기, 여자 나이 물어보기(단 생일은 무방함), 남의 모자 써보기(단 쓸 때는 안쪽에 침을 두세 번 뱉고 쓰기), 손님들끼리 외국어로 오래 말하기, 물건 왼손으로 잡기, 칼로 사물 지칭하기 등이 그것이다. 부득이하게 잘못을 범했을 때는 얼른 죄송하다는 현지어(오칠라레)를 건네는 순발력도 긴요하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뜻으로 “에즈니 네레르”하며 축복하면 더욱 좋을 성싶다.

  몽골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 기내식을 고려해 된장찌개와 맛있는 깍두기를 듬뿍 달래서 배불리 먹어뒀다. 고무적인 건 직전에 있었던 해프닝에 대한 좌중의 피드백. 다들 누군가가 나서주길 바라던 차에 무지한 무질서를 바로잡은 데 대한 반색이 잇따랐다. 문제는 그 빤한 얘기에 혹한 어린 영혼이 일곱에 달했다는 현실. 눈앞에 닥친 학업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당장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장난에 놀아난 경우치고는 안쓰럽고 걱정스러웠다. 이게 바로 심각한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영적 현주소였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출국수속을 밟을 때 나는 아이들에게 재삼 타일렀다.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열심히 학습하는 과정에서 좋아하는 과목이 생기고 직업에 대한 소명을 발견하는 거라고……. 초라한 공항청사. 갑자기 목이 말랐다. 곧바로 움직인 아들이 물을 얻어왔다. 재밌게도 “샌배노(안녕하세요), 바이를라(고마워요), 바이르테(안녕히 계세요)”를 구사해 손쉽게 식수를 구한 터였다. 놀라운 수완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로부터 영과 육을 식혀준 여정. 고맙게도 한 치 오차 없는 정시(현지 시각 23:55발) 이륙에 정시 연착륙(한국 시각 03:50)이었다. 게다가 밤새워 비행기를 타고 뜬눈으로 출근한 데는 아들의 공이 컸다. 기나긴 하루(조회를 포함한 6시간의 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지도). 이른 7시 이전부터 늦은 10시 너머까지 꽉 채운 강행군이었다. 모두가 건강을 지켜주시고 여유를 허락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277호)에서는 <'러브인아시아'를 보며>가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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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몽골 단기선교 : 한몽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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