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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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오 장로(의료법인 참좋은친구 박애병원 의료원장)
 
 
 
 어느 암 환우를 돌보는 중년 아들이 필자에게 하소연을 해 왔다. 위암을 수술하고 항암치료도 다 마쳤는데 환우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집에서 간호하고 있는데, 열사람이 오면 열사람 모두가 열 가지 치료방법을 가져 온다고 말했다. 그러한 말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처방을 들은 환우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치료방법을 찾아 나섰다.
 
 암 환우는 어느 날 또 하나의 처방을 받았다. 한약과 면역치료를 함께하는 곳에 가 보라는 것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환우는 그 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암에 효과가 있다는 그 처방은 너무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이라도 처방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급히 돈은 구했지만, 너무 큰 액수여서 망설이다가 수술한 의사에게 처방 받아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수술 의사는 효과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암환우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은 구했는데, 어느 사람은 효과가 있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효과가 없다고 하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암 환우는 처방을 받으려고 했고, 가족들은 의사의 판단을 존중하여 돈 허비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반대하고 나섰다. 환우와 그의 아들은 괴로워하며 필자에게 “의사들이 좀 연구하고 의논하여 어느 것은 하고 어느 것은 하지 말라고 분명한 지침을 달라”고 질문했다. 이러한 항의성 질문을 들은 필자는 우리 의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니 기독의사들 만이라도 이에 대한 해답을 해야 한다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말기 암 환우들이 큰 고통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암 치료가 모두 종료되면 의사는 이제는 더 치료할 것이 없는 만큼 ‘집에서 쉬고 잘 잡수세요’라고 쉽게 말하지만, 환우들은 그 말을 들으면 사형선고로 받아드린다.
 
 그래서 환우들은 또 다른 치료법이나 효과 있다는 민간요법 등 모든 것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암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와 처방들을 접하고 많은 돈을 들여 이곳저곳 찾아다니다 보면 남은 가족들만 경제적인 고통에 힘들어하고, 돌이킬 수 없는 가난으로 추락한다. 자연히 가정은 파탄되고 가족 관계도 깨어지며, 이것들이 사회적 고통으로 보이지 않게 쌓인다.
 
 여기에 대하여 기독의료인들이 해답을 주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첫째, 기독의사 중에 암 전문의를 포함해서 영양, 운동, 음악, 미술, 보조약품, 음식 등의 분야에 대하여 토의를 하여 어느 정도의 가이드를 주어야 한다. 이는 쉽지 않을 작업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노력을 해서 도전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
 
 둘째, 기독의사는 암 환우의 치료가 종료 되었어도 환우의 가료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제는 더 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암 환우들을 고통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것이다. 오래전 체육부장관이셨던 고 이영호 장관이 한국 기독의사회 모임에 오셔서 눈물로 호소했던 일이 기억이 난다. 휠체어를 타고 와서 지금 지압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것도 장관이라고 특혜를 받아서 순서를 빨리하여 이십 만 원의 대금을 지불하였단다.
 
 그분의 말대로 지압이 암 치료에 아무 효과도 없을 줄 알면서도 하도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 그것이라도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분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독의사들 만이라도 제발 암 환자를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호소였다. 이제 더 치료할 것이 없으니 집에서 잘 먹고 쉬세요 라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는 그 분의 간절한 호소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기독의사들이 무슨 일에 관심이 더 쏠려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셋째, 중간 단계의 호스피스를 활성화 해 보자. 호스피스는 암 환우에 대한 의사의 치료가 종료된 때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환우들을 돌보는 것으로 정의 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호스피스 시설에 입소하는 환우들은 거의 전부가 사망 직전의 환우들이다. 그야 말로 말기환자 가료인 셈이다. 환우가 통증 등 여러 가지 육체의 가료가 필요해 지거나 임종이 가까워져 집에서 가료가 어려울 때 호스피스에 입원 한다. 그동안 여기저기 암에 좋다는 처방을 받기 위해 돈을 다 탕진하고 가족은 파탄에 이른다.
 
 따라서 말기에 호스피스에 입원하기 전단계로 암 환우들을 등록을 받아 통원 치료나 낮 돌봄 등을 통하여 치료 종료 후 관리를 하는 중간단계의 호스피스를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이와 같은 사역을 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하여 방황하는 암 환우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암 치료 요법과 보존 요법에 대하여 연구하고 인증하는 모임 단체를 세워 이들에 대한 공적인 인증과 이를 통해 환우들이 이해하기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미 몇 클리닉에서 말기 암의 광범위 수술, 고주파온열치료, 면역증강치료, 미슬토 요법, 미네랄 요법, 메가 비타민 요법, 심리치료, 웃음, 미술치료, 신앙치료 등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암 환우들을 돌보고 있다. 그 분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 그러나 그 중에는 간혹 완화 되었다는 보고도 있지만 많은 분들은 효험이 없이 돈만 날렸다고 푸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분들이 고통하고 있다. 이 고통에 대하여 기독의사들은 외면할 수가 없다. 이들에 대해 의과학적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라도 정직하고 투명한 정보 가이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의료계와 행정부와 기독 암 전문의들이 모여 무슨 방도를 의논해 보아야 한다.
 
 다섯째, 암 환우들의 재정문제를 돌보아야 한다. 돈이 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은 암 환우가 집안에 생기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먼저는 죽음과 사별에 대한 문제 때문이고, 다음은 재정문제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병원에서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 정규치료를 할 때까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마련한다. 그러나 그 치료가 종료 되고 나면 가정은 파산 수준에 이르는데 또 보존요법에 메달리라고 하면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이들 인증된 보존요법들에 대하여는 의료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행정적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암 환우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여 터무니없이 비싼 진료를 하는 것도 마땅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환우들을 돌보시던 그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 의료인들이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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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의사 선생님, 암환자 포기한다는 말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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