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김선우 기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의 저서이기도 한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에서는 아이들에게 체벌과 훈계라는 명목으로 물리적 폭력은 물론 정서적인 학대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비권위적 사고를 대변하고 있다.

 최근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숙제를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앉았다, 일어섰다를 1초에 1회씩 800번 하는 체벌이 있었고, 체벌을 받은 학생은 근육 파열과 함께 내장까지 손상되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체벌 사유는 문제집 2쪽을 풀지 않아서다. 중요한 점은 피해학생이 계속 숙제를 안해가거나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학생도 아니었다.

 체벌을 받은 후 걷지도 못하게 된 학생은 집 근처의 종합병원을 찾았고, 학생의 간수치가 정상범위의 2배가 나오게 되자 증상이 심해지면 급성 신부전증이 오게 돼 나중에 투석을 받을 수도 있다며 주변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서둘러 옮기라고 권유했다. 체벌의 이름을 빌린 잔인한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꾀를 부리거나 중간에 관둘만도 했지만, 피해학생은 대충하면 함께 체벌받던 7명이 처음부터 800번의 앉았다, 일어섰다를 처음부터 다시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들이 힘들어할까봐. 또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하지만 어른들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는 것, 세월호 참사에서도 가슴 짠하게 접하지 않았던가.

 학생인권조례에 의해 체벌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지만, '교육의 이름만 빌리면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어른들만의 논리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것은 아닌지, 이는 가해 선생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만 잘할 수 있다면 체벌을 가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다수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일부는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학교는 우리의 아이들을 진실하며 정의롭고, 편견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을 자극하고, 발달시키고, 지도하며, 충분한 개인적 가치를 지는 쓸모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게 함으로써 전체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교육 본래의 의미를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말자.

 지난 3월에도 전남 순천 고교에서 학생이 지각했다는 이유로 벽에 머리를 찧는 체벌을 받고 22일 만에 숨졌다. 또 지난해 충북 청주에서도 중학교 운동부 코치가 학생을 때려 숨지게 했으며, 경남 함안에서도 여고생이 교사에게 뺨을 맞아 실명하는 일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와 뭐가 다른가.

 평택교육지원청도 관내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강도 높은 간접체벌과 직접체벌은 없는지, 또 '점수만 잘나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강제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지 총체적인 점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체벌을 그저 교육 안에서의 수단이라고 위로해서는 안된다. 학교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가 129개국,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체벌까지도 전면 금지한 나라가 37개국인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언제까지 체벌의 이름을 빌린 폭력을 정당화 할 것인지. 폭력과 다름없는 체벌을 대신할 훈육 방법에 대해 어른들 모두가 고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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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간접체벌은 교육의 이름을 빌린 체벌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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