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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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은행 업무를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한 적이 있다. 이때 꼭 나오는 멘트가 있다. 전화를 받는 콜센터 상담직원에게 정중한 언어를 사용해 달라는 권유이다. 그 이후에야 직원과의 통화가 시작된다. 직원은 대개 첫마디로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친절하게 묻는다. 이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바로 감정 노동자다.


항공기를 이용해 국내외로 여행할 때에도 늘 목격하는 장면이다. 승무원들이 단정한 복장과 예의 바른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소한 요구에도 귀를 기울이며 친절을 다한다. 승객으로서는 편안하고 기분까지 좋아진다. 그러나 간혹 마주치는 장면은 승객의 무례함이다. 양말을 벗은 채 기내를 돌아다니고, 이를 정중히 만류하면 반말과 욕설이 터져 나온다. 이때 승무원은 어떤 감정일까? 감정 노동자로서 얼마나 황당할까?


감정 노동자(emotional laborer)란 “자신의 진짜 감정과 상관없이, 직무상 요구되는 감정을 표현하고 통제해야 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미국 사회학자 아를리 호크실드(Arlie Hochschild)가 1983년 『The Managed Heart』라는 저서에서 처음 제시했다.


감정 노동의 특징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노동의 일환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즉, 고객 만족을 위해 친절, 미소, 공감 등을 ‘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일이다. 내면의 감정과 외면의 표현이 불일치할 경우, 심리적 소진(burnout)이나 우울, 분노 등이 생길 수도 있다.


필자의 아내는 재활치료를 위해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처음 발병해 긴급히 앰뷸런스로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해 밤새 각종 검사를 받았고, 다음 날 전문의의 판명은 특별한 치료약이 없는 희귀병이라는 것이었다. 재활치료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때 가족 간병인으로서 대학병원 병실에서 가장 밀착된 상태로 아내 곁에 머물러야 했다. 이후 지역 병원으로 내려와 재활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의사, 간호사, 간병사, 그 외 병원 종사자들이야말로 감정 노동자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환자를 통해 그들이 겪는 감정 노동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었다.


반면, 간병사들의 불친절한 언행으로 인해 환자의 감정이 우울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특히 간병사의 80~90%를 차지하는 중국 동포(조선족)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언어가 무례하고 불친절한 경우를 매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다 보니, 최근에는 간호사가 간병까지 담당하는 병실을 운영하는 대형 병원도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동포 간병사들도 병원에서 종일 환자를 돌보며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고된 직업이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끼리 병실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고령의 환자에게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호통을 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럴 때마다 당사자인 환자는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환자들까지 간접적으로 상처를 받게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감정 노동자들이 점점 더 다양한 직종에서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서비스가 고품격을 갖추게 된다면 사회 전반이 더욱 편안해지고, 문화의 수준 또한 높아질 것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 품질 유지와 향상을 통해 소비자가 다시 찾게 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국가 이미지나 기업의 평판을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 노동은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기능도 한다. 기업을 찾은 고객의 분노나 불만, 스트레스를 감정적으로 중재하며 사회의 긴장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감정 노동자의 서비스 질이 높아지면, 취약계층의 돌봄과 보호에서 더욱 큰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간호사, 돌봄 노동자, 간병사, 상담사 등은 감정을 담아 인간적인 케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약자 보호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공감, 친절, 위로는 감정 노동자의 ‘감정 서비스’를 통해 사회 전체에 따뜻한 분위기를 퍼뜨리는 힘이 된다. 우리 사회가 그런 선진적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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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감정 노동자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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