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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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평택한방병원 대표원장

여성의 생애에서 갱년기는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전환기이다. 대개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나는 이 변화는 단순히 생리의 종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체와 감정, 그리고 삶의 방향까지도 새롭게 조율해야 하는 시기이며, 때로는 신호 없이 찾아오는 신체적 불편함과 정서적인 불안으로 여성들에게 깊은 혼란을 주기도 한다. 서양의학에서는 갱년기를 주로 호르몬의 변화로 설명하고 이에 대한 치료로 호르몬 요법 등을 제시하지만, 한의학에서는 갱년기를 더욱 전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인체의 균형과 조화의 흐름 속에서 이 시기를 해석하고 치료에 임한다.


한의학 원전 『황제내경』에서는 여자의 생애를 7년마다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며, 49세 전후를 생식 기능의 자연스러운 쇠퇴 시점으로 본다. 이때부터 천계가 고갈되고 자궁의 기운이 쇠하여 생리가 멈추게 되며, 이는 단지 생리의 종료를 넘어서 전신적인 기혈 순환, 장부 기능, 정서 변화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이 시기에는 특히 신장의 기운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인체의 뿌리가 흔들리는 듯한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갱년기 여성들이 흔히 겪는 안면홍조, 다한, 가슴 두근거림, 불면, 피로감, 정서의 기복 등은 모두 몸 안에서 기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거나 음양의 조화가 깨졌음을 나타내는 신호로 해석된다. 얼굴이 자주 달아오르거나 손발이 화끈거리는 현상은 음기가 부족해 허열이 치솟는 신음허의 양상일 수 있으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쉽게 화가 나거나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는 것은 간의 기운이 울체되어 소통되지 못하는 간울로 설명된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자주 깨어나거나 머리가 맑지 않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현상은 심과 비의 기운이 허해져 정신활동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할 수 있다.


이처럼 갱년기의 증상은 단일한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장부의 기능 약화와 기혈의 불균형, 정서적인 변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각 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치료 방향을 달리한다. 어떤 이에게는 신장의 기운을 보강해주는 방법이 필요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간의 기운을 순조롭게 풀어주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흐름을 바로잡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데 중점을 둔다.


한약 치료는 그 중심에 있다. 대표적인 약재로는 신장을 보하고 허열을 내리는 지황, 산조인, 복령 등이 있으며, 이를 활용한 육미지황탕이나 가미소요산 등은 갱년기 증상 완화에 자주 활용된다. 처방은 개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따라 달라지므로 전문가의 진단을 거쳐야 하며, 동일한 증상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다를 수 있기에 정밀한 접근이 요구된다. 침구 치료도 한의학의 중요한 방법으로, 특정 혈자리를 자극하여 장부의 기능을 조절하고 기혈의 흐름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백회, 신문, 삼음교, 족삼리 등의 혈자리는 갱년기 증상 완화에 자주 사용되며, 침은 단기간 내 정서적 안정과 자율신경계의 조화를 유도할 수 있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가벼운 운동, 정서적 안정을 위한 명상은 기혈의 순환을 돕고 신체 전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음식은 지나치게 찬 성질이나 자극적인 것을 피하고, 검은콩, 흑임자, 대추, 호두 등 신장의 기운을 보충해 주는 식품들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갱년기를 단지 불편한 시기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삶의 국면을 준비하는 성장의 시기로 바라보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갱년기는 여성의 삶에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한 시기이며, 이는 노화가 아니라 전환이다. 한의학은 이 전환을 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맞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외부의 자극에 민감해진 몸과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자연의 흐름 속에서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 그 여정 속에서 한의학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건강을 다스리는 방법을 함께 제시한다. 갱년기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그 시작을 위한 준비는 몸과 마음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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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여성의 갱년기는 새로운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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