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나무 개구리가 된 맹꽁이
배수로·집수정에 빠진 맹꽁이, 생존 위해 벚나무 타고 올라… 새로운 삶의 방식 선택

나무를 오르는 개구리가 있다면 이는 당연히 청개구리이다. 청개구리는 영어로 ‘tree frog(나무 개구리)’라고 부르는데, 여느 무미양서류들과는 달리 발가락 끝에 사물에 잘 붙을 수 있도록 둥근 빨판(흡반)이 있어서 풀이나 나무도 잘 타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논이나 습지 주변에서 번식한 후 풀이나 나무 위에 올라가 쉬거나 먹이 활동을 하며, 너무 덥거나 추울 때는 돌과 나무 틈이나 흙을 파고 들어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청개구리가 나무를 오르는 것은, 맹꽁이가 땅을 파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맹꽁이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청개구리와 같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배수로나 집수정에 빠진 맹꽁이가 생존을 위해 수직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을 넘어 이제는 생존보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 위해, 생각지도 못했던 ‘나무 개구리’가 된 것이다.
배다리 저수지에서 시작된 금개구리가 분산 압력에 의해 실개천을 거쳐 함양지 못까지 세력을 넓힌 것도 믿기지 않지만, 배다리 마을숲에서 벚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곳에 터를 잡은 맹꽁이 또한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 맹꽁이의 연중 생활사
한해의 절반 이상을 땅속에서 지내는 맹꽁이(2013.9.13 덕동산마을숲)
맹꽁이는 겨울에는 땅속에서 동면하다가 봄에 깨어나 먹이 활동을 시작하며, 여름 장마철에는 장맛비로 고인 물에서 번식하고, 가을에는 다시 동면을 준비하는 계절적 생활사를 지닌다. 10월부터 2월까지의 동면기와 장마가 오기 전까지의 긴 시간을 땅속에서 보내는 것을 보면, 장마와 함께 시작되는 번식과 활동 기간은 고작 3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2. 맹꽁이에게 6~8월(여름)
장마를 기다린 맹꽁이에게 여름은 최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계절(2013.6.18 덕동산)
맹꽁이에게 6~8월은 주요 활동기이자 번식기로, 연중 최고의 시기다. 강수량은 적었지만 평택시의 경우 맹꽁이에게 자극이 될 만한 장맛비가 지난 6월 20일에 있었고, 번식에 충분한 빗물은 아니었어도 평택 전역의 맹꽁이들이 나대지의 집터 주변부터 마을 숲 가장자리, 심지어 배수로 집수정과 맨홀 안에서도 소리 높여 존재감을 드러냈다.
3. 맹꽁이의 번식 과정
배다리마을숲 묘지의 이장으로 생긴 구덩이에 낳은 맹꽁이 알(2024.6.23 배다리마을숲)
맹꽁이는 다른 개구리류보다 늦은 시기인 장마철이 시작되면, 얕게 고인 물에 암수가 모여 번식한다. 알은 하나하나 흩어지거나 모여 수면 위에 떠 있고, 하루나 이틀 만에 올챙이로 부화해 한 달 안에 성체로 성장한 뒤 물을 떠난다. 장맛비로 고인 물에서 번식을 마치면 다시 주변 은신처로 돌아가 먹이 활동을 하며, 10월이면 겨울 준비에 들어간다.
4. 맹꽁이의 신체적 특징
몸을 부풀려 소리를 내거나 위협에 대응하는 맹꽁이(2013.6.18 덕동산마을숲)
맹꽁이는 몸통이 둥글고 다리가 짧은, 작은 맹꽁이과의 개구리이다. 등에는 불규칙한 검은 반점이 있으며, 수컷은 턱 아래의 울음주머니로 암컷과 구별된다. 맹꽁이는 몸을 부풀려 위협에 대응하고 끈끈한 점액을 분비하기도 하며, 위급할 때는 뒷다리로 땅을 잘 파 숨기 때문에 ‘쟁기발개구리’라고도 불린다.
5. 맹꽁이, 청개구리의 신체적 특성 비교
손가락, 발가락 끝에 흡반이 발달한 청개구리(2011.9.25 덕동산마을숲)
맹꽁이는 땅을 파기 좋도록 앞발과 뒷발이 짧고 강하며, 뒷발 안쪽에는 흙을 밀어내기 좋은 ‘땅파기 돌기(경화된 돌기)’가 있다. 반면, 청개구리는 나무에 오르기 좋게 손끝과 발끝에 접착성이 있는 ‘흡반’이 발달해 있어 잎과 가지에 잘 붙는다. 맹꽁이는 땅속에 숨어 사는 데 특화된 신체 구조가 특징이라면, 청개구리는 나무에 올라 활동하기에 적합한 몸과 흡반을 지녔다.
6. 청개구리가 된 맹꽁이
청개구리가 되어 벚나무를 수직으로 오르는 맹꽁이(2025.7.6. 배다리마을숲)
야행성과 지상 생활, 숨기 행동에서는 맹꽁이와 두꺼비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맹꽁이와 청개구리는 다소 차이가 있다. 특히 번식 후 숲으로 이동해 나무에 올라 휴식하며 먹이 활동을 하는 청개구리와, 땅속에 숨었다가 밤에 나와 먹이 활동을 하는 맹꽁이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배다리마을숲에서는 마치 맹꽁이가 청개구리가 된 듯한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7. 마을숲의 자존심, 맹꽁이서식지
묘지 이장으로 새롭게 형성된 배다리마을숲 맹꽁이 서식지(2026.6.22 배다리마을숲)
오래전 공동묘지가 있었고, 소사벌 개발과 함께 이장이 이루어진 배다리 마을숲에서는 장마와 함께 맹꽁이들이 깨어나, 이장으로 생긴 구덩이 주변에 모여 구애의 소란을 벌인 뒤 곧바로 산란에 들어간다. 나무에 가려 빛 에너지가 부족하지만, 8월이면 변태를 마친 맹꽁이 유생들이 마을숲 사방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며 마을숲의 자존심으로 거듭난다.
8. 매미의 출현과 맹꽁이의 출현
1차 신란을 마친 후 마을숲에서 먹이 활동 중인 맹꽁이(2025.6.30 배다리마을숲)
한여름에 나타나 무더운 여름을 알리는 대표적인 곤충으로 매미가 있다. 매미 소리는 계절의 흐름을 알려 주며, 생태계의 시간이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때가 되면 번식에 참여했던 맹꽁이들도 마을 숲 이곳저곳을 다니며 먹이 활동에 열중한다. 배다리 마을숲 자작나무 주변과 맨발 걷기 황톳길 주변에서 먹이 활동에 집중하는 맹꽁이를 만날 수 있다.
9. 벚나무에 터 잡은 맹꽁이
껍질눈이 발달한 벚나무를 타고 올라 자리 잡은 맹꽁이(2025.6.28 배다리마을숲)
장마다운 장마는 아니었지만 일부 맹꽁이의 번식이 있었고, 번식에 충분한 장맛비를 기대했으나 장마가 끝났다는 예보가 나왔다. 번식에 참여하지 못한 일부 맹꽁이는 나름 의미 있는 일에 나섰고, 그중 일부는 벚나무의 피목(껍질눈)을 이용해 어른 키높이를 넘는 곳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일주일간 이어진 야간 조사에서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10. 생태계에 중요한 원리 ‘적응’
배수로와 집수정에 빠져 하수관으로 소실되었던 맹꽁이(2023.6.29 소사벌지역)
누가 땅속에만 사는 맹꽁이라고 했는지,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은 청개구리만의 일이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필요에 따라 벚나무를 수직으로 올라가 굵은 가지가 겹치는 곳의 벌어진 틈새를 확보한 맹꽁이는 일주일 내내 같은 장소에서 확인되었다. 배수로와 집수정에 빠져 하수관으로 소실되었던 맹꽁이지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이제는 나무 개구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