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에게 있어 ‘비염’은 그저 불편한 코 질환 그 이상이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코가 막히며,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 이 증상은 단순한 감기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만성화되면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두통, 심지어 우울감까지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계절이 바뀌거나 공기 중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 요인이 겹치면 증상이 악화되기 쉽다. 이러한 비염에 대해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접근하고 치료할까?
한의학에서 비염은 단순히 ‘코’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인체 전체의 기혈(氣血)의 흐름, 장부의 기능, 체질적인 요인까지 통합적으로 살펴본다. 한의학에서는 비염을 “비규불통(鼻竅不通)”, 즉 코의 구멍이 막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며, 원인에 따라 다양한 진단명으로 분류한다. 대표적으로는 ‘풍한형’, ‘풍열형’, ‘비위허약형’, ‘신허형’, ‘폐기허약형’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외부의 찬 기운이 코로 침입해 생기는 풍한형 비염은 콧물이 맑고 재채기가 심하며, 찬 바람을 맞으면 증상이 악화된다. 반대로 풍열형은 콧물이 노랗고 끈적하며, 코가 자주 막히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 외에도 위장이 약해 생긴 비위허약형이나, 신장의 기능이 저하된 신허형은 코뿐만 아니라 전신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체질이 있다고 본다. 이 체질에 따라 특정 질환에 취약할 수 있으며, 비염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몸이 차고 기혈이 부족한 태음인이나 소음인은 찬 공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쉽게 코가 막히거나 맑은 콧물이 흐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열이 많고 얼굴에 열감이 자주 느껴지는 소양인은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비중격만곡증 같은 질환과 연관이 깊다. 따라서 비염을 단순히 약으로 눌러서 잠재우기보다는, 자신의 체질을 바탕으로 맞춤형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이 필요하다. 이는 한의학이 지향하는 ‘근본치료’의 중요한 핵심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비염 치료에 있어 다양한 방법을 병행한다. 대표적인 치료법으로는 한약 치료, 침 치료, 뜸치료, 약침치료 등이 있다. 한약 치료는 비염의 유형에 따라 맞춤형 한약을 처방한다. 예를 들어, 풍한형 비염에는 체내의 찬 기운을 몰아내고 면역력을 높이는 약재가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마황, 계지, 세신 등의 약재가 포함될 수 있으며, 만성 비염에는 황기, 방풍, 백출 등의 약재를 사용하여 체질을 개선한다.
코막힘이나 재채기 완화에는 비근(鼻根), 영향(迎香), 풍지(風池), 합곡(合谷) 등의 혈자리를 자극한다. 이는 코 주변 혈류 개선과 면역 조절 기능에 효과적이다.
뜸과 부항치료는 신체의 특정 부위에 뜸을 떠주거나 부항을 통해 순환을 돕고, 체내 한기를 제거하여 호흡기 건강을 도모한다. 특히 비염이 오래 지속되며 체력이 떨어진 경우 뜸 치료가 효과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의 예방 또한 치료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다. 비염 역시 일상 속 습관 개선을 통해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체온유지다.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특히 환절기나 겨울철에는 얇은 스카프나 목도리로 목을 감싸 체온을 보호한다. 두 번째로는 적절한 수분 섭취다. 몸속 수분이 부족하면 점막이 마르고 코안이 쉽게 건조해져 염증이 생기기 쉽다. 하루 6~8잔 정도의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세 번째로는 알레르기 유발원을 피하는 것이 좋다. 먼지, 진드기, 꽃가루, 애완동물 털 등 알레르기성 비염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미리 파악하고, 청소 및 환기를 철저히 한다. 네 번째로는 체질에 맞는 음식과 차를 마시면 도움이 된다. 몸이 찬 사람은 생강차, 대추차와 같은 따뜻한 성질의 음료를 즐기고, 열이 많은 사람은 녹두차나 도라지차로 열을 내려주는 식습관이 도움이 된다.
비염은 단순한 코 질환이 아니라, 몸 전체의 불균형이 만들어낸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한의학은 이 신호를 놓치지 않고, 사람의 체질과 생활 습관, 심리상태까지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근본적인 치료를 도모한다. 현대 의학의 치료와 병행하거나,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경우라면 한의학적 접근을 시도해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2024년 4월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이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의 대상 질환에 포함되었다. 한약 치료가 비염 치료에 효과적임에도 비용으로 고민이 되었던 비염 환자분들의 비용 부담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듦에 따라 비염 치료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적극 치료하여 생활의 질을 높이고 건강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