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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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제1의 도시답게 인구 380만이 상주하는 상업의 중심지. 시청과 법원 등이 도열한 관공서 구역에 상업은행 본점이 있었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듯 상당히 정교한 가로에 야자수 행렬이 볼 만했다. 바다가 지척이어서 여전히 갯바람은 거칠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로 인해 한껏 유명세를 탄 이후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탈바꿈한 보도를 어딘가 이방인인 듯한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영화의 배경처럼 비록 어수선하지는 않았지만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하산 메스키타 모스크를 빼면 선뜻 구미를 당기는 건 없었다. 1956년에야 비로소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왕국으로 자리매김한 뒤부터 여러 차례 반전을 시도했으나 인구의 절반을 넘는 문맹률에 갇혀 여태껏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곳곳에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고, 매끄럽지 못한 노상에는 비둘기 똥이 지천이다. 그중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상호는 사하라 투어(SAHARA TOUR). 그밖에 몇 군데 영문자가 눈에 띄었지만 보면 볼수록 아랍어 생김새는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때였다. 반가운 문자가 코앞에 나타났다. 알파벳으로 적은 ‘HYUNDAI’, 새삼스레 강조하건대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이 애국자다. 식민지 시절 건설한 프랑스식 성당이 10개에 달한다는데 쉬이 발견할 수는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경, 출근행렬로 인해 병목현상이 빚어졌다. 재밌는 건 건물들이 죄다 네모난 모양새. 차 안에 흐르는 페리귄트의 조곡을 뒤로하고 부슬비를 맞으며 항구로 내닫는 가운데 사고현장을 보았다. 물길을 겸한 중간분리대에 대중버스가 뒤집혀 있었다. 이상한 광경은 그 주위를 빼곡히 에워싼 구경꾼들. 호기심에 흘끔흘끔 쳐다보는 거야 이해하겠으나 아예 차들을 세워놓고 일삼아 즐기는 문화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맙게도 개중에는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이들도 보였다. 응당 그들에 의해 체증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련만 그 북새통을 놓칠세라 호객꾼들이 판을 쳤다. 바람직한 건 이네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엔지니어, 특히 토목 분야가 으뜸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의식의 흐름은 훨씬 나은 터다. 우리처럼 마냥 화이트칼라를 지망하는 풍조만은 지양해야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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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카사블랑카 거리 모습

 

그걸 뒷받침하듯 저만치 밭에서 진흙탕 놀이에 푹 빠진 아이들이 보였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으로 내몰리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광경. 저렇게 열심히 노는 게 아이들의 일이거늘 한국은 어쩌다가 선행학습의 장으로 전락했는지 모를 일이다.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은 교포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양배추김치에 오이장아찌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혀끝에 생생하다.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토록 많은 길손들에게 즐거움을 줄 줄을 미처 모르셨단다. 빵에 물린 위장이 어머니의 손맛을 보다니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모로코를 찾는 동포들에게 고향의 참맛을 선사하길 빌었다. 자동차는 어제 들렀던 라바트를 경유해 어느덧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내륙으로 뻗은 평원에 갈색과 회색의 풀들이 나풀거린다. 내친김에 두 시간을 채웠으니 어김없이 휴게소에 머물 시각. 저만치 유칼립투스가 자라는 곳은 과연 옥토일까, 박토일까? 나지막한 비닐하우스 사이에 간간이 뵈는 원두막은 비에 젖어 후줄근했고, 땅 기운은 습할 대로 습했다. 그렇게 얼마큼을 더 가니 이정표에 지브롤터(Gibraltar)라고 씌어있었다.


그때 가이드는 일행을 향해 기도를 부탁했다. 풍랑이 심할 경우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진다는 전언. 안전상 문제로 인해 웬만한 파고에도 페리를 띄우지 않은 채 지체되었던 실례가 있었단다. 만일 큰 배를 이용해 멀리 돌아갈 경우 자그마치 네 시간씩이나 걸린다니 말이다. 더 큰 문제는 별도의 추가 요금 부담은 물론 좌석이 찰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 다행히 약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출발. 잔잔한 풍랑이 일행을 도왔다. 게다가 떠날 때는 어린이 두 명이 엔진 부위 빈 공간에 숨어 있다가 발각된 것 말고는 별다른 제재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장난을 쳐도 그들이 받는 제재는 훈방조치가 고작. 아내는 애써 뱃멀미를 무찌를 셈인지 셋이서 짝을 이뤄 대화에 열중이었다. 문득 둘째 날에 나와 동갑내기가 자신의 아내를 향해 사용한 표현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좋은 친구’라는 멘트가 좌중의 심금을 울렸다. 아무렴, 왜 아니 그러하랴. 저마다 흐뭇한 표정을 짓는 사이 어느덧 다시금 찾은 타리파 항구가 지척이었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71호)에는 ‘「욥기」의 주제의식 - 욥이란 인간의 정체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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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모로코를 만나다 ‘휴양도시 카사블랑카를 걷다’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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