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덧붙여 유대민족을 괴롭힌 것은 근대 그 자체, 시대적 상황이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일어난 민족주의, 산업주의, 공산주의, 전제주의 등의 열풍은 유대인들에게는 특수한 도전이었다. 서구의 불건전한 정신에서 태동한 반유대주의가 그들의 처지를 더한층 어렵게 만들었다. 유태인들은 지금 이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생존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주위 여건에 둘러싸여 있다. 작금의 세계정세는 친 이스라엘파의 움직임으로 이슬람 문화권을 한데로 뭉치게 하고 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친이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국제정치의 변수는 바야흐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공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불거진 각종 테러의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를 총포의 화염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어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끊임없는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느 누가 끊어줄 것인가의 해답은 오직 주님만이 알고 계신다는 확신에서, 이스라엘 역사야말로 복음에 입각한 온전한 구속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그것이 성경이 전하는 영적 메시지다.
그에 따라 지상에 남은 흔적이 아예 없다고 알려져 역사의 존재 여부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가 실체적 진실이다. 문제는 성경을 연구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인류사의 주요 사료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존 학계의 태도에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종교를 학문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역사학계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학문적 유불리를 떠나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한 채 저지르는 영적 무지의 단면이 고질적 문제라는 것이다. 세인들이 금지옥엽처럼 여겨온 고대 문헌들과 그간 발굴된 유물들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보충교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다가 역사의 개념을 정의하는 학계의 합의마저 유명무실한 현실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 답답하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통한 해석 방법과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이 지금으로서는 절실한 과제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일은 성경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토막을 내서 증명하려는 일부 신학자의 자세다. 과연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하는 소리인지 그것부터 차분히 하나하나 검증해볼 단계다.
▲ 어둑발에 찾아 바라본 통곡의 벽
무려 1,500년이 넘는 기간에 40명 내외의 기록자에 의해 완성된 신구약 성경의 세세한 내용은 성령의 감동(영감)이 없이는 그토록 일관성 있게 진술할 수 없는 성삼위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연구가들이 성경전서 66권을 펼쳐놓고 종교적 문헌의 하나쯤으로 운운하는 행위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다. 성경에서 일러주는 역사적 지식 전반이 이스라엘의 실제 역사인 것이다. 민감한 사안들이 학계에서 합의가 되었든 아니든 창조 신앙을 가진 필자에게는 부수적 요소에 해당한다. 창세 이래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우주의 원리에 앞서는 창조주의 주권적 영역일 뿐이다. 어찌 성경에 적시된 주제들이 실제와는 무관한 문학적 창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 수 있는지 심히 의아할 따름이다. 현재 우리 교단에서 이른바 창조론을 운위하면 이는 무지하거나 겁도 없는 교사로 취급을 받는다. 최소한 창조론과 진화론을 양립이라도 하자고 주장해도 시대 흐름조차 모르는 무모한 지식인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보듯이 각국에서 정리한 역사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
초장에 밝힌 바와 같이 필자는 철두철미한 성경주의자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세상의 모든 해답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흔히 말하는 최대주의자(maximalist)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공언한 그대로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혜를 십분 활용하여 특별히 내려주신 영적 감동으로 지상에서 벌어진 영적 현상과 본질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에게 이스라엘의 기원을 묻는다면 창세기를 비롯한 열왕기와 역대기를 들어 그걸로 족하다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설혹 그것이 역사학적으로 정리된 체계적인 연대기적 구성과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도, 성경은 여타의 자료들을 모아 증명해야 마땅할 절대가치일지언정 기타 증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되는 부차적 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역사물도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면 철저히 배격해야 옳다는 것이 이스라엘 역사를 보는 필자의 확고부동한 원칙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유대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아니고서는 아예 설명 자체가 불가한 지점이다.
■ 프로필
- 기고활동을 이어가며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교직 퇴임 후 기독교철학 분야와 문화교양학을 공부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
- 본지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하고 있습니다.
※ 다음호(754호)에는 ‘전쟁의 역설적 교훈 - 전쟁의 역설에 대한 리뷰’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