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여, 하늘이여, 우리를 어찌하려 하십니까? 어떻게 이런 고통을 연이어 주시는 겁니까?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원망해도 당분간은 우리를 참아주소서.
못난 어버이를 만나 고생하는 자식 같은 우리의 처지를 다 아시면서 어찌 우리 살붙이 형제와 자매, 어린 것들까지 이렇게 불러가십니까? 그들이 무엇을 그리도 잘못한 것입니까? 도저히 하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왜 우리에게 세월호와 이태원에 이어 무안공항의 참사를 주신 겁니까? 이제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하늘을 향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까?
우리는 탄식합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김일성의 남침에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신 은총을 알고 있고 보릿고개를 넘던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설 수 있게 하신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비통한 눈물을 많이도 흘려야 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엔 온 국민이 오랜 시간 함께 울었습니다. 이제는 기쁨의 눈물만 남은 줄 알았습니다.
하늘이여, 우리를 다시 굽어 살피소서. 우리는 한해를 보내야 하는 길목에서 섣부른 희망을 노래한 것일까요? 오지 않을 연락선을 기다리는 피난민 같은 소망을 기대한 것인가요?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고 탄식의 소리가 하늘에 닿지 않는지요?
하늘이여 다시금 허락하소서. 지금 비통과 비애에 잠겨있는 유족들을 살펴주소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위로와 소망을 주소서. 우리는 무엇으로도 그들의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린 다만 그들 곁에서 울어줄 뿐입니다. 온 국민이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울어주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늘이여, 용서하소서. 우리 가운데 아직도 서로 공존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과오를 용서하소서. 국민을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우매한 정치인들과 거짓 뉴스를 퍼뜨리는 악마의 전사들과 사전에 경고의 나팔을 크게 불지 않았던 언론계와 종교계를 용서하소서.
하늘이여 이제는 허락하소서. 그 많은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린 백성이오니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존재와 생명이 당신 손에 있사오니 우리를 기억하소서.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소서.
지금은 다만 추모할 시간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차분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유족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에 동참하게 하소서. 온 국민의 좌절감과 충격을 도닥여 주소서. 극한 슬픔 가운데서라도 하늘의 뜻을 헤아리게 하소서.
이를 위해 9.11 미국 국제무역센터 테러 희생자 추모의 곡으로 명명되어 연주되었던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Adagio for Strings)’를 들으며 추모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 곡에 흐르는 애절한 슬픔과 그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조용한 결단의 마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소서.
하여, 간곡히 호소하오니 하늘이여, 우리를 살펴주소서. 우리의 추모하는 마음을 보소서.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서로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며 우리가 비로소 이 눈물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