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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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요즘 부쩍 뜨고 있다는 조지아(Georgia: 370만 명 남짓, 면적 69,700.0㎢, 9천 달러) 역시 코카서스산맥을 끼고 사는 나라. 국경 마을에서 북적대는 아침 전통시장을 구경하고 어렵사리 국경을 통과한 뒤 곧바로 눈에 들어온 강줄기는 탁한 화산재가 뒤섞인 흙탕물이었다. 그런데 수풀에 둘러싸인 허름한 농가에 가느다란 철제 파이프를 볼품없이 연결해 놓았는데, 그 정체를 물으니 가스관이란다. 굳이 지상으로 돌출 시공한 까닭은 해박한 전문 가이드마저 공사비밖에는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간 산길을 내달린 끝에 일행이 멈춘 곳은 조지아 와인의 시발지. 의아한 건 큼지막한 항아리들을 시멘트 바닥에 파묻은 모습이었다. 반만년을 공들여 발효한 전통 비법치고는 갸우뚱한 장면? 아니나 다를까, 카헤티에서의 경험치는 이내 식탁으로 옮아온 듯 포도주를 시음한 아내 말마따나 음식이 별로였다. 물론 평소 주류 자체를 입에 대지 않는 게 주요인이로되 그대로 입맛에도 영향을 주더라는 가벼운 경험칙이랄까. 이를 단박에 상쇄한 반전이 있었으니 싱그런 포도밭을 벗 삼아 피어난 보랏빛 라벤더였다.


사랑의 도시로 알려진 시그나기(피난처라는 뜻) 성벽(1975년 역사지구로 지정) 답사는 니코 피로스마니 박물관에서 시작했다. 해설을 들으니 이곳이 바로 백만송이 장미 노래의 배경지. 한 국민화가의 못다 이룬 러브스토리를 가사에 담았다는 얘긴데, 카케티 지역이 러시아와 가깝다 보니 심수봉이 번안 가요로 선보일 때부터 여러 설이 돌았으나 원곡은 라트비아 민요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나는 박물관의 전시물보다는 아슬아슬한 성곽길에 관심이 갔고, 허접한 성벽 위보다는 2차대전 메모리얼 기념공원에 방점을 찍었다. 여태껏 아물지 않은 전쟁의 깊숙한 상흔. 쇠사슬에 묶인 채 개죽음을 당한 11~15세 소년들의 피 울음이 귓전을 때리는 가운데 이렇게나마 어린 영혼을 기리는 숨은 고리에 끊임없이 반복하는 죄악의 생물성은 어쩌랴. 그래서일까, 잠시로되 다들 꺼리는 국내 정치의 어수선한 막장을 뼈아프게 되짚었다. 인류의 흑역사를 훑어보면 난제의 진앙은 늘 꼭대기에 있었다. 리더십을 바로 세우면 조직은 살아나는 법이니까. 놀라운 일은 피로스마니의 16개 작품이 피카소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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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아 트빌리시의 삼위일체 교회

 

수도인 트빌리시로 들어와 가장 궁금한 바는 기독교 국가의 색다른 면모였다. 4세기경 고유문자 창제와 더불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국민의 84%가량이 조지아정교 신자인 사회의 예배당은 어떤 모습일까? 일정상에도 응당 러시아정교회에 필적할 만한 성삼위일체 사메바교회는 들어있었다. 더구나 이만한 대역사를 국민 성금으로 이룩했다면 그 의미는 남다를 터. 아닌 게 아니라 아름답고 장엄한 자태를 대하자마자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조지아 건축의 백미라 고평가한들 전연 과하지 않을 듯했다. 한마디로 우아미를 갖춘 조형미의 총화. 조지아인들에게 이곳은 신앙적 차원에서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국가 상징물임이 틀림없었다. 이어서 찾은 메테히교회는 실시간 통행량이 많은 도로 건너편 절벽 위에 있어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5세기경 왕궁 보호를 위해 축성한 이래 시대별 변천사에 따라 교도소, 미술품 보관소, 극장으로 사용하다가 다시금 본연의 임무로 돌아왔다는 설명을 들으니 날렵한 기마상이야말로 군중을 이끄는 기수역을 너끈히 수행해내는 형상이었다.


거의 반반씩 나뉘어 쿠라강 뱃놀이와 강변 산책을 즐기는 시간이 주어졌다. 정갈하게 다듬은 조경수도 그렇고 미끈하고 튼튼한 평화의 다리도 그랬고 정성껏 꾸민 정원이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분수대 옆 거대한 유리관처럼 지은 건물은 끝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전 부도를 맞은 상태. 외관이 워낙 근사해 인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다는데 호기심을 발동해 그 언저리를 엿보는 것도 내심 조심스러웠다. 아무튼 수도 한가운데 이만한 쉼터가 있다는 건 시민들의 홍복. 이윽고 약속한 시각이 되어 삼삼오오 케이블카를 타고 조지아 어머니상이 보이는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꿈속에 예수를 양육한 마리아에게서 모종의 언질을 받은 니노라는 여인이 그 장본인이라는데, 몇 번을 올려다봐도 아직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동정녀에 가깝다는 게 중론. 제단 왼쪽에 심은 포도나무 십자가에 머리카락을 묶었다는 전설이 사실이건 아니건 시오니성당에 얽힌 스토리라고들 믿으니 연일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드는 거 아니겠나? 위 내용은 ‘계시 및 성모’라는 용어를 복음의 시각으로 서술했다는 점을 밝힌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46호)에는 ‘코카서스 기행 - 조지아의 자산가치는 자연환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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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코카서스 기행 ‘조지아의 트빌리시는 문전성시’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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