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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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하늘이 고운 날, 다인승 벤츠 대신 걸어서 로마 시내를 둘러본 기회는 행운이었다. 기실 어젯밤 입소문만 무성한 나폴리(세계 3대 미항?)를 벗어날 때만 해도 줄기찬 빗소리 때문에 통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말이다. 첫 목적지는 로마의 랜드마크인 콜로세움. 1층은 투스카니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토스식 기둥으로 꾸며져 있든 말든 한눈에 들어온 건축미는 그야말로 시신경에 경련을 일으킬 지경. 그런데 왜 첫 탐방 때는 그토록 후줄근하게 보였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현재 진행형인 보강공사로 인해 황금색으로 거듭났다는 전제를 깔고서도 예술미에 정교함을 더한 자태를 설명해낼 자신이 없을 정도. 하긴 그때만 해도 사방에서 뿜어대는 매연에 의해 부식되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러한 세계유산을 베드로 대성당을 지으며 채석장으로 이용했다니 참으로 통탄할 수밖에. 아직 확인하지 못한 내부는 타원형 평면의 장변과 단변이 가장 조화롭게 1.618 대 1의 황금 비율로 건조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 바로 곁에 세운 콘스탄티누스개선문은 균형추였다.


일행과 떨어져 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본 콜로세움의 위용은 더욱 장관이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 채 발걸음을 돌리니 온통 내가 좋아하는 갈색 톤. 포로 로마노의 입구를 기준으로 훑어보자면 티투스 개선문을 시작으로 베스타 신전과 무녀의 집을 지나 율리아 공회당과 원로원 건물 옆으로 아우구스투스 및 세베루스 개선문과 마주한 몇 개의 신전들이 눈앞에 가로놓여있다. 거기에다가 당시 백화점이었던 건물에서 풍기는 색조의 조화로움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한데, 유감스럽게도 유물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히 넓은 구역을 전면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 통행 금지 대신 망원경을 설치했으나 토큰을 집어넣으라 하니 귀찮을뿐더러 관광객으로서는 직접 걸어서 로마의 심장부를 관통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을 무기한 유예하라는 통첩이나 다름없어, 차라리 당대 모습을 그래픽으로 복원한 영상물이 더 낫지 싶지만, 이토록 쾌적한 날씨에 고대 로마의 민주정치가 행해지고 법을 집행하며 상업활동의 중심지였던 땅을 이곳 지리에 밝은 안내자와 함께 오붓이 돌아본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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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기념관 옥상에서 본 포로로마노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건진 번외 수확은 거대한 통일기념관의 발견. 로마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소일뿐더러 로마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단계별 전망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옥상으로 올라가니 방금 전 지나온 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길을 돌려 시내를 가로지르는 비아 델 코르소를 따라가면 로마 북쪽의 포폴로 광장까지 시원스럽게 뚫려있는데, 당연히 콜로세움은 물론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왜 굳이 혈세를 들여 이만한 석조건물을 지어야 했을까? 앞서 살펴봤듯이 이탈리아는 서기 476년 서로마 멸망 이후 각각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무려 1400년 동안이나 하나로 통합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대차게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가 갈라졌던 도시들을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187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35년 이탈리아 정부는 초대 국왕을 기리는 통일기념관을 건설하였고, 신고전주의를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중앙 계단 위로는 코린트식 열주 기둥, 꼭대기 좌우에는 사두마차를 모는 그리스신화의 니케 및 청동 기마상을 탄 자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을 저만치 두고 트레비 분수를 어찌 그냥 지나치랴. 그런데 아뿔싸, 분수에 물이 바짝 말라붙다니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오래전에는 여럿이 주머니 눈치가 보여 그냥 지나쳤으나 고가의 아이스크림도 두 개나 사서 먹어주는(3.5유로X2=원화로 만 원대가 넘는 가격) 등, 이전과는 확연히 결이 다른 접근을 시도해보기로 했겠다. 다름 아닌 세 갈래 길이 만나는 처소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리라는 다짐이거늘, 제아무리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도무지 자연과 예술의 결합이라는 속뜻을 도통 헤아리지 못하겠으니 어쩐담. 그도 그럴 게 빼곡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자투리 동전을 어깨너머로 던지며 재방문을 약속할 일은 전부터 관심 밖이었고, 주어진 시간에는 여유가 있으니 반경을 넓혀 주변을 걸어보기로 한 건 그래서다. 문제는 늘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부담을 경계해야 한다는 삭막함. 어쨌든 바로크식 외관을 자랑하는 산 빈첸초 에드 아나스타지오 교회나, 그 뒤 교황의 정궁으로 사용했다는 팔라초 퀴리날레를 찾아본들 출출한 뱃속을 달래줄 맛있는 요리에 비할까?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8호)에는 ‘바티칸: 강고한 교황의 아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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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유럽 견문기 ‘이태리: 걸어서 둘러본 로마’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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