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가운데 두 시간 반 만에 안착한 스위스 벨포르역의 플래폼. 서른 명이 연달아 내리는 짐 가방들은 흡사 수화물을 취급하는 인부처럼 숨 가쁘게 돌아갔다. 아쉬운 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인터라켄으로 가는 내내 기대하던 바깥 구경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에서 차량 불빛마저 어찌나 흐린지 산맥이나 호수는 고사하고 차창 가까이 보일 법한 초원조차 그림자처럼 어렴풋했는데, 그걸 일거에 보상해준 선물은 안락한 숙소. 운치가 있고 깨끗하고 좁지도 않아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상쾌한 공기를 즐길 새도 없이 이른 식사를 마치자마자 향한 간이역사는 벌써 만원. 오늘 케이블카에 오를 인파를 보아하니 융프라우의 인기는 여전한 터다. 눈앞에 시시각각 펼쳐지는 산수화. 늦겨울이어선지 특유의 푸르른 빛깔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고도가 높아지는 만큼 응달에 쌓인 눈덩이가 눈에 띄었는데, 흰 융단을 두른 듯한 기다란 스키장이 인공눈이란 걸 알고 나니 여기라고 해서 지구 온난화를 피해갈 수야 있으랴마는 심란해지는 심사는 어쩔 수 없었다.
한국의 40% 남짓한 땅덩어리(1/4이 알프스산맥)에 채 900만 명도 안 되는 인구이므로 일찌감치 영세 중립국을 자처할 수밖에는 없었겠으나, 유럽연합(EU)에까지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칫 지금의 부요(1인당 GDP 약 10만 달러)를 지속적으로 담보하기 어렵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즉, 자유 왕래가 가능한 셍겐조약의 비준만 갖고도 충분히 정치(10만 명이면 ‘국민 발의’ 가동),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으니 굳이 자국 화폐(프랑)가 아닌 유로를 쓰면서까지 불투명한 미래를 선택할 까닭이 없다는 게 찬반투표에서 3/4 이상이 반대한 논리였다. 그러고 보니 독일계, 프랑스계, 이탈리아계가 섞여 살며 로망슈어까지 공식어로 인정하는 상황에서도 양원제로 23개 주가 연방을 이루고 있다는 건 놀라운 합집합. 간간이 나타나는 주황색 지붕이나 축사처럼 뵈는 허름한 헛간도 서로들 간격을 유지한 채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산정에 다가갈수록 희뿌연 산안개가 아예 시야 자체를 가렸음에도 곧 말끔히 걷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몽블랑 융프라우로 오르는 케이블카
아닌 게 아니라 차츰 날씨가 맑아지더니 이윽고 투박한 기암괴석들이 하나둘 정체를 드러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 깎아지른 천애 절벽을 바로 코앞에 둔 느낌은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 직접 마주하지 않고는 어떠한 낱말로도 전달이 쉽지 않다는 게 시인의 토로다.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는 천 길 낭떠러지. 그러니 몽블랑을 보기 위해 수많은 객들이 적잖은 금전과 공력을 투입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얼마큼을 오른 뒤 다시 산악열차로 갈아타는 거야 예고한 대로였으되, 이처럼 거대한 산세를 관통하면서까지 융프라우로 가는 길을 단축한 조치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천혜의 대자연을 훼손한 작위에 감탄이 아닌 한숨이 먼저 흘러나온 참이다. 필자의 경우 그 지난한 대역사를 두고 단순히 토목공사라는 시각으로 사안을 규정할 순 없었지만, 어쨌거나 돋보이는 지점은 설산과 얼음동굴을 살린 정교한 설계도. 다만 나도 모르게 엄습한 고산병에도 불구하고 그냥 예전대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느리게 오르거나 곤돌라를 이용해도 괜찮았겠다는 아쉬움을 좀체 떨쳐내기 어려웠다.
하늘 끝에 맞닿은 스핑크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의 꼭짓점. 다행히 짙은 운무도 저만치 걷혀 만년설로 뒤덮인 몽블랑의 속살을 잠시나마 물끄러미 조망한 시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리라. 모든 등정이 그러하듯 이제는 하산할 시간. 그것이 설령 얌체같이 문명의 이기를 활용했을 때는 자연이 아픈 만큼 힘이 덜 들어갈 뿐이다. 아내에게서 비싼 아이거익스프레스 표를 받아들고 위아래 차편을 오르내리는 동안 내 건강은 경고음을 냈고 배우자는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거라면, 마지막 남은 중남미 여행의 복병은 바로 필자인 셈이어서 한편으론 씁쓸하면서도 40년 지기 짝꿍이 대견스러운 건 당연지사이렷다. 이어진 점심은 푸짐한 한식. 서둘러 출발한 리무진 앞에는 수십 개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82개의 알프스 봉우리 가운데 스위스에 무려 48개나 있다니 지나갈 동굴이 얼마나 많으랴. 고마운 건 어젯밤 지나쳤던 풍광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이전에 봤던 루체른 호수며 험준한 능선에 걸터앉은 산당을 빼닮은 건물도 눈길을 끌었다. 이탈리아 국경은 단지 최소한의 경계선이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정론지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5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34호)에는 ‘서유럽 견문기 - 이태리: 밀라노 거쳐 베니스’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