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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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어제 오후 비가 내리고 도로는 젖어 있었다.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막 도로에 진입해 불과 100여 m를 가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마주 오던 승용차 운전자가 운전석의 창을 내리고 나를 향해 무어라고 외쳤다. 나는 창을 내리고 소리를 들었다. “유류 주입구가 열렸어요”


나는 감사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신호등 네거리를 지나 적당한 위치에 차를 세웠다. 유류 주입구가 열려 있었다. 아마 그대로 달렸다면 휘발유가 거리에 쏟아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를 향해 창을 내리고 외치듯 소리쳐 준 익명의 시민이 고마웠다.


사람에게는 선한 양심이 있다. 선한 양심이 나를 움직이고 있다면 건전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선한 양심이 무디어지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해진다.


최근 발생한 ‘의사의 난’은 과연 선한 양심에서 일어난 일인지 묻게 된다. 일개 평범한 시민도 선한 양심을 작동해 무관한 상대편 차량에 긴급히 위기 정보를 제공해 주었는데,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과연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이었을까? 특히 긴급한 환자들의 생명을 돌보는 일을 뒤로하고 이래도 되는 걸까?


서울대학교 병원 공공진료센터장인 권용진 교수는 “전공의 선생님들께”라는 글에서 전공의의 정체성에 대해 말했다. ‘의사는 사람의 고귀한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라는 의사윤리 조항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또 스승에게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예의 없는 행동, 근로자로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행동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법과 양심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지탱되고 유지되어 왔다. 법만으로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 법만으로 규제하는 사회는 경직되고 억압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법 이전에 양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법과 더불어 작동해야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것이다.


또한 이번 ‘의사의 난’을 법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경직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선한 양심에 호소하고 서로 견해를 좁혀가는 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의사들은 엘리트 계층이다. 충분히 대화로 소통이 가능한 집단이다.


정부는 선한 양심에 호소하고, 전공의는 납득할 수 있는 사유와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선한 양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협상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증 환자의 고통과 애타는 가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예수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온 여인을 향해 법대로 돌을 치라고 하지 않았다. 분노한 군중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치라”라고 했다. 선한 양심에 호소했다. 


베드로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기에 고난과 핍박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로마제국에 저항하지 말고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라. 무엇보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선한 양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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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선한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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