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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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실은 이태원(梨泰院)이란 곳에 대한 궁금증은 이전부터 품고 있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동떨어진 데를 맘먹고 간다는 게 예전처럼 쉽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놈의 핼러윈데이에 벌어졌다는 대참사 현장엘 가보니 도리어 이해 불가한 경우의 수였다. 어떻게 이 짧고 좁은 골목에서 무슨 조화로 인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일이 지구촌을 술렁이게 했는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미심쩍은 김에 검색창에 ‘조화(造化)’를 치니, 그 내막이나 이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거나 야릇한 일에 이어서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라고 나온 터. 그렇다면 특정 세계관으로 사안을 풀어가는 필자의 문해력으로도 뭔가 꼬투리는 잡힐 성싶은데, 이 또한 곰곰이 헤아려보면 상통하기보다는 거꾸로 정반대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어서 개개인에 따라서는 몹시 난삽한 국면으로 빠져들 수도 있겠다는 지각이 들었다. 왜 치안 당국은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거늘 예방이 아닌 방치를 택했을까? 무슨 연유로 유가족의 슬픔을 보듬기는커녕 한사코 진상규명과 원만한 사후처리를 외면하는 걸까?


꼼꼼히 그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금 해밀턴호텔을 눈치껏 기웃거려본들 모종의 단서는 고사하고 일말의 의구심조차 발견하기 어렵더라는 말이다. 짐짓 그때를 소환하면 간간이 흘러나온 언론의 토막기사처럼 정체 모를 세력이 밑에서 떠받치고 위에서 떠밀어 한창때 체구들을 비좁은 공간에 꼼짝없이 옭아맸다는 설이거니와, 설령 그렇다 한들 무려 158명이나 되는 인명이 질식사에까지 이를 수 있겠느냐는 문제 제기다. 위에서 짚어본 조화라는 표현이 유효한 건 그래서다. 뜯어볼수록 기괴한 나머지 그야말로 천지의 조화가 아니고서야 도무지 풀어낼 재간이 없다는 훈수밖에 달리 끌어올 낱말이 궁색하다는 군소리랄까! 기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보행로가 의외로 넓다는 느낌 말고는 별다른 낌새는 없었다. 그런데 그 뒷길로 몇 걸음 올라가니 외국어로 도배된 간판은 물론 한가위 연휴 탓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더미에서 특유의 치즈 내가 진동하고 있었던 것. 유독 이런 분야에 예민한 아내는 독한 술에 절고 찌든 악취가 뒤섞여 콧속을 찌른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애써 스멀거리는 감성을 추스르고 뭔가에 내쫓기듯 추념의 틈새를 벗어났으나 한동안 거기서 묻어온 기류는 좀체 물러설 줄 몰랐다. 제아무리 유능한 영화감독이라 해도 그 정황상의 전방위적 재현은 연출로서는 불가능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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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의 해밀턴호텔 골목

 

여태껏 경험칙에 따르면 타성에 젖은 첩보 가운데 유용한 건 방향을 올바로 알아차리는 오감. 요 근처에 있다는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 오랜 미군기지가 있었다. 바로 위쪽에 설치한 위압적인 철조망은 역대 한미관계를 규정하는 상징물. 그 언짢은 기분을 보상해준 건 담장을 뒤덮은 이끼류였다. 서울 한복판을 걸으면서 이만큼 신선한 대기를 마셔본 기억이 있던가? 반 시간 남짓 걸음을 내디딘 끝에 목적지가 나타났다. 갑자기 시야를 가린 대통령실의 금박휘장을 회피한 채 그 건너편으로 눈길을 돌리니 각양각색의 전투기들이 작은 숲을 이뤘다. 한눈에 번듯하게 꾸민 조경지. 눈앞에 전시한 각종 무기류에 몇 가지 조형물이며 동선의 편안함도 발끝에 와 닿았다. 비록 볼멘소리로되 청와대보다 낫다는 입말이 절로 흘러나올 만치. 3만여 평의 대지를 한 바퀴 돌아 중앙통로에 접어드니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명단을 연도별로 새겨놓았다. 유유히 나부끼는 참전국 깃발들. 연못에 갇힌 물고기들도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유엔군을 추모하듯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더부살이할 때도 차편으로는 수없이 지나쳤을 낯익은 가로변인데 우리 둘이서 용산길을 따라 남영동 거리를 걸어본 적은 없었다. 막상 해묵은 초행길에 나서니 다가오는 감회는 남달랐다. 여기저기 뜯고 손본 데 중 흔한 집은 역시나 커피점. 갈월동으로 빠지는 굴다리 위로는 소음을 내뿜는 전차들이 번잡하고, 하늘로 치솟은 빌딩만 뺀다면 언뜻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이윽고 여전히 구한말 자태를 간직한 서울역 구청사. 한쪽을 개축해 임대했건 딴 편에선 경의선을 운영하든 말든, 북적이는 인파에 파묻힌 신청사는 건축술의 새로운 공법을 차입했으나 노숙자에 치이고 온갖 마이크 소음이 뒤엉켜선지 산만한 분위기를 떨쳐내긴 버거워 뵌다. 이참에 여러 겹의 원형 계단을 딛고 올라선 서울역 옥상정원. 나름 꾸미느라 안간힘은 썼지만,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내내 다양한 화단 구성의 필요성과 더불어 시선의 이동을 부드럽게 다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703호)에는 ‘청와대 탐방 뒷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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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이태원에서 서울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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